여야간 합의된 ‘정기국회 내 쟁점법안 처리 약속’이 휴지조각이 됐다. 정기국회 종료일인 9일 본회의에 상정 조차되지 못한 채 마감하면서 입법기능을 상실했다는 오명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곧바로 10일 임시국회를 열고 다시 주요 법안 타결을 시도하지만 임시국회 일정을 놓고도 여야가 삐걱대고 있는 상황이라 연내 처리는 요원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9대 국회는 역대 가장 많은 법안을 발의하며 활발한 입법 활동을 펼쳤음에도 결국 ‘속 빈 강정’으로 마감하게 됐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지난 2일 밤을 새워가며 쟁점법안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기업활력제고특별법·사회적경제기본법·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과 테러방지법·북한인권법을 정기국회 안에 ‘합의후 처리’키로 약속했다. 하지만 9일 마지막 본회의가 열리는 날까지도 법안 심사 조차 진행하지 않았다. 합의를 위한 최소한 노력도 등한시했다는 평가다. 여야는 이날 114건의 무쟁점 법안 등 총 117건의 안건만 의결했다.
지난 9월 1일부터 100일에 걸쳐 열린 이번 정기국회에서 본회의에 처리된 법안은 고작 499건에 불과했다. 내년도 예산안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비롯한 각종 동의안 등을 모두 포함해도 처리 의안건수는 500여건에 그쳤다.
19대 국회가 개원한 2012년 5월 30일부터 9일까지 국회에 발의된 법안은 총 1만7222건이다. 이 가운데 실제로 본회의에서 가결된 법안 수는 5563건으로, 전체 제출 법안의 32.3%에 그쳤다. 10건 중 3건이 가결된 셈이다.
30%대 가결률은 역대 국회 중 최악의 성적표다. 18대 국회에선 총 1만3913건 법안이 발의돼 이 중 6178건이 입법화돼 가결률 44.4%를 기록했다. 17대 국회 때는 발의 법안 총 7489건 가운데 3775건이 본회의서 가결돼 가결률 50.4%를 보였다. 이보다 앞선 16대와 15대는 각각 62.9%, 73% 가결률을 올렸다.
이번 19대 국회 들어 법안 처리 실적이 크게 낮아진 데는 각종 정치현안을 놓고 여야 간 대치 정국이 장기화되면서 수시로 국회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또 경제활성화법 등 주요 법안에 대한 여야 입장 차가 커 협의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야당 동의 없이는 쟁점법안을 처리할 수 없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협상 여건이 어려워진 측면도 작용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30%대 가결률은 여야가 정쟁으로 국회 고유 역할인 입법기능을 소홀히 했다는 방증이 되기에 충분한 수치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초라한 성적으로 정기국회 문을 닫게 된 19대 국회와 관련 “(심경이) 착잡하다”면서 “국회선진화법 하에서는 의장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좁고, 그래서 국회를 운영하는 데 굉장히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정기국회 내 주요법안 처리가 끝내 무산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별도 대국민 담화로 입장을 발표하는 방안 검토에 들어갔다. 박 대통령은 그간 국무회의 등을 통해 국회를 상대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기업활력제고법(원샷법), 테러방지법 등을 정기국회 기간 내 처리를 수차례 강조해 왔다. 박대통령은 국회를 향해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는 것은 위선이고 직무유기이자,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고까지 성토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