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날이 밝으면 잠에서 깨고, 어두워지면 잠을 잔다. 마치 사람 몸속에 시계가 들어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같이 규칙적인 수면 주기가 유지되는 이유는 생체리듬에 관여하는 멜라토닌(melatonin) 때문이다. 보통 밤 9시께 분비되기 시작해, 아침 7시쯤 멈추는 이 호르몬 때문에 사람들은 매일 일정한 시간에 잠을 자고 기상하게 되는 것이다.
소화를 돕는 효소가 배출되는 시점도 시계처럼 정확하다.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 식사를 앞두고 조금씩 배출되기 시작한다.
밥을 먹고 난 다음에 효소가 나오면 소화를 제대로 시킬 수 없기 때문에, 식사를 할 때쯤이 되면 우리 몸이 미리 음식을 소화시킬 효소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 몸은 24시간을 주기로 일정하게 움직이는 신체리듬을 갖고 있는데, 이를 ‘생체시계(biological clock)’라 부른다.
생체시계를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갔을 때 겪게 되는 ‘시차’를 통해 우리는 생체시계에 대한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 시차로 고생하는 까닭은 우리 몸의 현재 시각이 언제인지를 알려주는 ‘생체시계’와 ‘현지 시각’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체시계가 중요한 이유는 사람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거나 끼니를 제 때 챙기지 못하면 평소 리듬을 잃어버리면서 생체시계가 교란을 일으킨다. 물론 하루나 이틀 정도는 평소와 다른 리듬을 보여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사람의 신체는 그렇게 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잠을 자거나, 일을 하는데 있어 신체에 가장 적합한 시간대가 있을까?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는 집중력과 논리적 추론 능력이 극대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가 공부나 중요한 업무를 하는데 있어 적합한 시간이라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반면 오후 6시에서 8시 사이 초저녁은 심폐기능이 우수하고, 근력이나 유연성이 높아지는 시간대다. 따라서 걷기나 달리기 등 운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라 할 수 있다.
낮에 잠을 자야 하는 사람은 침실환경을 바꿔 자신의 신체를 속여야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검은 커튼을 달거나 안대를 착용하는 등 비록 낮이지만 밤처럼 환경을 조성해야한다.
체내에 생체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 1954년 무렵이다. 그러나 생체시계 원리는 최근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규명은 김재경 KAIST 수리과학과 교수 연구팀이 해냈다. 미분방정식을 이용한 수학적 모델링을 통해 온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생체시계 속도를 유지하는 원리를 발견했다.
KAIST 연구진은 이 같은 이유를 ‘피리어드2(Period2)’라는 핵심 단백질에서 찾았다.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피리어드2 단백질에 있는 ‘인산화 스위치(phosphoryltion switch)’가 피리어드2 분해속도를 천천히 일어나게 함으로써, 비록 온도가 올라가도 생체시계가 일정한 속도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체온이 올랐을 때, 피리어드2 단백질이 생체시계 태엽을 풀어서 빨라지는 분침을 천천히 가도록 늦추기 때문에 일정 속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체온이 떨어져 생체시계 분침이 느리게 가면, 이 단백질이 태엽을 감아 빨리 가도록 조정해 주는 역할을 한다.
KAIST 연구진은 이 같은 모델링 가설을 토대로 듀크-싱가포르 국립 의과대학 데이비드 벌쉽(David Virshup) 교수와 공동 실험을 진행했고, 그 결과가 최근 저명 학술지인 ‘몰리큘라 셀(Molecular Cell)’에 게재돼 주목을 끌고 있다.
앞으로 피리어드2 단백질을 조절하는 약물을 개발하면, 생체시계 시간을 인위적으로 늦추거나 빠르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어렵고 복잡하게만 생각했던 수학으로 생물학 난제를 해결한 사례다.
김준래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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