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온고지신]과학기술자의 풀뿌리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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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9일부터 23일까지 세계과학정상회의가 첨단과학도시 대전에서 개최된다. 이 행사를 통해 우리나라는 창조경제를 국제사회와 공유하고 국제과학기술 혁신방안 수립을 주도하는 등 우리 과학기술 외교역량을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기술 외교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세계과학정상회의와 같은 주요 행사 유치도 중요하지만 과학기술자 자신이 속해있는 국제기구나 단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풀뿌리형 국제 활동도 매우 중요하다.

지난 9월초 필자는 체코 프라하에서 개최된 국제측정연합 세계대회에서 독일 연방물리청 실장 출신 독일 과학자를 만난 적이 있다. 이 독일 과학자는 국제측정단체 중 하나인 국제측정연합 분과의장으로 필자를 추천해 준 인물이다. 이분 추천으로 필자는 분과의장으로 당선됐고 연이어 유럽 과학기술자들의 독무대였던 총괄기술위원장에도 당선됐으며, 국제측정연합 회장, 자문위원장까지 맡을 수 있었다. 이분이 필자를 국제무대에 추천한 이유는 국제측정연합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때문이었다고 얘기해 줬다. 그러면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세계 평화를 위해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모습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필자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내 입장에서야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지만 외국인 시각에서는 한국인에 대한 일반적인 열정으로 비춰졌던 것 같다. 필자뿐만 아니라 국제 활동에 참여하는 우리나라 과학자들의 열정은 국제적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이 국제통신연합 표준화 국장, 국제 핵융합 실험로 사무차장, 국제원자력기구 국장으로 선출되는 등 국제기구에서 활동 폭을 활발히 넓히고 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역량에 비하면 아직도 국제 활동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게다가 국제무대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역량도 상당히 부족한 것도 현실이다. 그동안 국제기구 활동을 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풀뿌리형 과학기술 국제 활동을 강화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국제기구나 국제 학회에 참석해 전문성을 인정받고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해야 한다. 여러 학회나 국제기구에 참석해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 보다 한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국제기구 주요 임원진은 외견상 투표를 통해 선출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 분야 전문가가 임원진을 추천하고 선임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우가 많다.

둘째, 국제 활동을 잘 하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외국어 구사능력은 기본이고 역사, 음약, 미술, 문학 등 다양한 분야 기본 지식과 소양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가 국제 활동을 하면서 가장 부족했던 점이 이들 분야에 대한 기본지식이다. 만찬이나 휴식 시간에 회의 관련 내용만 화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 문화, 역사 등 다양한 내용들이 화제가 되는데 이것에 대한 기본 지식이 부족하면 대화에 참여하지 못해 혼자 외톨이가 된 느낌을 받게 된다.

셋째, 국제기구 주요 책임자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와 단체에 대해 봉사하는 마음과 궁극적으로 국제사회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국제 활동을 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당장 나한테 도움도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가지면 국제 활동을 제대로 할 수 도 없으며 국제 활동 전문가가 될 수도 없다.

마지막으로 국가 차원 지원 체계 구축을 구축해 국제 활동을 하는 전문가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양성해야 한다. 국제 활동을 잘 하기 위해서는 해외출장을 지속적으로 가야 한다. 많은 과학기술자가 국제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애로는 해외 출장비를 확보하는 일이다. 출장비를 프로젝트에 반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국제 활동이 프로젝트와 직접 관련이 없으면 프로젝트에서 지원을 받을 수 없다.

풀뿌리형 국제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제 활동을 하는 과학기술자의 현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오지 여행 중 한국인끼리 만나면 반가워한다. 필자는 과학기술분야 국제기구나 단체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한국인을 만났을 때 더 없이 반갑기만 하다. 우리 과학기술자 개개인이 국제무대에서 당당히 활약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국제기구나 단체에 진출하는 과학자를 만나는 일이 ‘특별히 반가운 일’이 아니라 ‘일상의 평범한 일’이길 바란다.

강대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연구위원 dikang@kris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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