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렉서스의 전통적 이미지는 ‘사모님 차’였다. 고풍스러운 디자인과 부드러운 주행감, 안락한 승차감으로 사랑받으며 원조 ‘강남 쏘나타’ 명성을 얻었다. 좋은 차였지만 젊은 차는 아니었다. 외모에서 주행까지 ‘다이나믹’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렉서스가 변했다. 커다란 스핀들 그릴에 과감한 화살촉 램프로 공격적인 디자인을 완성했다. 신비로운 동양 노인 미소를 매서운 사무라이 눈빛으로 바꿨다. 미국·유럽 자동차와는 다른 일본 차만의 세련미를 추구했다.
지난 9월 새로 나온 ‘올 뉴 ES’에서도 이런 변화를 엿볼 수 있다. 렉서스는 이제 새 디자인 콘셉트에 완전히 자신감을 찾은 듯하다. 보닛과 휀더를 제외한 앞모습은 모두 바꿨다. 그릴 중앙을 가로지르던 막대를 없애 한 덩어리로 뭉쳤다. 안개등 테두리는 세로로 세웠다. 그릴 너비 자체를 넓혀 한층 자신감 있어 보인다.
주행 성능은 명성 그대로다. 주력 모델 ES 300h(하이브리드)를 올림픽대로와 잠실 일대, 춘천고속도로 130㎞ 구간에서 직접 타봤다. 부드럽고 안락하다. 하지만 가속 반응은 민첩하다. 하이브리드차의 정숙성은 기본이다. 이것이 일본 차의 힘이다.
전기 힘으로만 주행하지만 저속 구간 토크가 좋다. 운전석에서도 강하게 치고 나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디젤엔진 추진력과는 사뭇 다른 힘이다. 가속 초기부터 최대 토크를 발생시키는 전기 모터 발진력이 차를 묵직하게 밀어준다. 조금 더 속도를 내자면 가솔린 엔진이 기민하게 합세한다.
고속 주행 능력은 의외다. 제한속도를 훌쩍 넘겼지만 이렇다 할 역동성은 없다. 하지만 계기판 바늘은 멈출 줄을 모른다. 티 나지 않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비서를 닮았다. 여러 모로 역동보다는 편안함에 초점을 뒀다. 저·중속과 고속 모든 구간에서 렉서스가 자랑하는 안락한 주행을 놓치지 않았다.
큰 차체에 비해 코너링도 민첩하다. 조향 반응이 빨라 운전자 뜻대로 차를 움직이기에 좋다. 차체 쏠림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이만한 차체를 앞바퀴 굴림(전륜구동) 방식으로 움직이려면 어쩔 수 없다. 편안한 시트 착좌감과 물렁한 서스펜션으로 안락함을 추구했지만 뒷좌석을 ‘의전석’으로 쓰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일반 승용차보다는 현격히 적지만 의전차 치고는 좌·우 쏠림이 명확한 편이다.
대신 인테리어 고급감 만큼은 웬만한 하이엔드급 차량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실내 구석구석까지 정성이 느껴진다. 운전대 스포크(다리)를 더 늘씬하게 다듬는 대신 스위치 배열을 더 직관적으로 바꿨다. 디스플레이 화면을 4.2인치로 키워 한눈에 정보를 파악하기 좋다. 천정에 달린 조명 스위치는 터치 방식으로 바꿔 고급감을 높였다.
곳곳에 입힌 줄무늬 나무 모양 테두리는 개성과 고급감을 동시에 잡았다. 최고급 세단 LS에 도입했던 ‘시마모쿠(줄무늬 나무)’ 원목 장식을 ES에도 적용했다. 무늬목 전문 업체 ‘호쿠산’이 38일 간 67단계 공정을 거쳐 납품하는 최고급 자재다. 자동차 실내를 이 정도까지 꾸며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정성스러운 기운이 가득하다.
렉서스 올 뉴 ES가 탑승자를 기분 좋게 만드는 점은 ‘내가 배려 받고 있다’는 느낌이다. 뒷좌석 팔걸이에 내장된 버튼도 좋은 예다. 뒷좌석 공조장치와 오디오 등 차량 편의 기능 대부분을 조작할 수 있다. 가족은 물론 중요한 손님을 태워도 걱정이 없다. 운전자는 안락한 주행감 덕분에 오랜 운전도 지치지 않는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