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세계과학정상회의 개최의 역사적 의미

세계 정치를 주름잡고 있는 강대국 간 정상회담은 종종 역사의 커다란 물줄기를 돌려놓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일례로 지난 1972년 당시 사실상 적대관계였던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중국 마오쩌둥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에서 ‘마오타이’주를 들고 건배하는 역사적인 장면은 세계 외교사에 길이 남을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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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외교가 징검다리를 놓았던 이 기념비적인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죽의 장막’에 갇혀 있던 중국은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1979년 중국은 미국과 전격적인 수교를 발표했으며 이후 중국은 덩샤오핑 국가주석 주도로 개방정책을 가속화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 일원으로 우뚝 서게 됐다.

정치에서만 정상회담이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5차 솔베이 국제물리학회의는 세계적인 물리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정상회담이었다. 이 회의 참석자는 막스 플랑크, 루이 드 브로이, 알버트 아인슈타인, 에르빈 슈뢰딩거,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닐스 보어, 폴 디렉, 마리 퀴리 등 20세기 초 과학의 황금기를 만들어낸 당대 세계 최고 과학자들이었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과 보어 논쟁이 있었고 결국 보어가 주도한 코펜하겐 해석을 양자역학 표준해석으로 받아들이는 역사적인 계기가 됐다. ‘솔베이 과학정상회담’에서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이 갈라지는 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올해 10월 대전에서는 세계과학정상회의가 열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대한민국 미래창조과학부 공동 주최로 열리는 이번 정상회담에는 세계 60개국 과학기술 분야 장관급 인사를 비롯해 유네스코와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 수장, 글로벌 CEO와 노벨상 수상자 등 3000여명에 이르는 고위급 인사와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그동안 OECD 주도로 열렸던 과학정상회의와는 달리 올해 처음으로 OECD 본부가 있는 파리를 벗어나 52년 만에 우리나라 과학 수도인 대전에서 열리게 됐다. 또한 과학기술정상회의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중단돼 왔는데, 이번 한국개최를 계기로 우리 주도로 아세안국가(ASEAN·동남아국가연합)까지 참여시켜 세계과학정상회의로 한 단계 더 격상됐다.

세계과학정상회의 주제는 시대적 소명에 맞게 ‘과학기술 혁신을 통한 글로벌 미래 창조’로 정해졌다. 우리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과학기술 혁신을 통한 창조경제’를 OECD에 주제로 적극 제안해 인정받은 것이다. 세계과학정상회의 개최 의미를 새기기 위해 10월 19일 ‘엔트로피’ 등 미래학 저서로 잘 알려진 제러미 리프킨과 200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아론 시카노바 등 세계적인 석학들이 참여하는 ‘세계과학기술포럼’으로 화려한 막을 연다. 이후 OECD 과학기술장관회의와 과학기술정책위원회 총회 등 본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이를 대내적으로 마무리하는 대한민국 과학발전 대토론회 순으로 23일까지 닷새간 진행된다. 정상회의에서는 향후 10년 동안 과학기술 발전 방향을 담은 ‘대전 선언문’을 채택할 예정이라 더 큰 의의가 있다.

올해는 우리가 OECD에 가입한 지 20주년이자 광복 7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가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3위권 경제대국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룬 데는 과학기술 힘이 가장 컸다. 우리는 선진국으로부터 원조를 받는 어려운 경제여건에서도 과학기술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본격적인 연구개발(R&D)에 뛰어든 지 불과 반세기 만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예산 비중은 2012년 기준 4.39%로 세계 1위에 올랐으며 이제는 개발도상국에 과학기술 원조를 제공하는 나라로 우뚝 성장했다. 이런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 경험과 역량을 인정받아 세계과학정상회의 유치라는 쾌거를 이룩한 것이다.

정치 분야 정상회담이 세계사 흐름을 바꾸고 과학계 최정상급 인사들이 모인 솔베이 회의가 세계 과학의 혁명적 도약을 이뤄낸 것처럼 세계과학정상회의가 대한민국이 세계 과학기술 발전 물꼬를 트는 전기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승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kofac@kofac.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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