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충전기 업계가 서울시와 제주도 전기차 보급 사업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업체는 사업 과정에서 지자체로부터 충전기 설치 뒤 8개월째 공사비를 받지 못하거나 가격 인하 요구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21일 업계와 지자체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시작된 ‘서울시 전기차 민간 보급사업’에 참여한 중소업체 4곳 모두 서울시로부터 설치공사(충전기 포함)비 상당액을 받지 못한 상태다. 전체 182기 완속충전기 중 127기가 설치 완료돼 약 8억원이 결제됐어야 하지만 지난달까지 절반 정도만 납부됐다. 충전기를 포함한 설치 공사까지 마쳤지만 충전기 값과 설치비 등 절반을 최장 8개월 동안 결제 받지 못한 셈이다. 반면에 대기업 전기차 완성차업체에는 차량 인도 직후 차량구매 보조금을 처리하도록 했다.
서울시는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이달 초 충전기 업체에 설치 공사별 내역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이를 근거로 공사비를 처리하겠다고 했다. 조사 과정에서 서울시가 뒤늦게 가격인하를 요구한 정황이 포착됐다.
충전기업체 관계자는 “서울시가 완성차 업체에는 지원 보조금을 차량 인도 직후 결제해주는 것과 달리 충전기는 8개월이 넘어도 처리해주지 않고 있다”며 “이제 와서 제출한 세부 내역서를 근거로 미납액을 준다고 하지만 2년 전 광주시 보급사업 최저입찰가를 기준으로 가격을 깎으려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내역서를 접수하는 대로 신속하게 미납금을 처리하겠다”며 “이제 와서 가격인하를 요구한 건 사실이 아니고 오해일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 일부 전기차 행정도 충전기 업계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제주도는 도내 사업자만 충전기 입찰에 참여하도록 규정했다. 최근부터 도내 충전기 보급·관리를 제주테크노파크에 위탁해 운영한다. 이 때문에 충전기업체는 두 단계를 거쳐야만 충전기를 판매할 수밖에 없다. 제주에 충전기 개발·제조업체가 전무해 도내 기업을 무조건 거쳐야 하는 구조다. 결국 충전기업체는 도내 업체에 주는 5~10% 유통 마진과 제주테크노파크 입찰처리 수수료(5%)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정해진 충전기 가격에 15%가량 부담을 안고 사업할 수밖에 없다.
한 충전기업체 대표는 “전국에서 가장 큰 전기차 물량을 가진 제주에 충전기 제조·개발업체는 단 한 곳도 없는데 도내 기업만 입찰에 참여하도록 한 건 유통 마진을 높이는 것 외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며 “제주도 정책과 제주테크노파크 운영 관련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전기차용 충전기사업은 중소기업만 영위한다. 정부가 중소기업 산업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전기차용 충전기 사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업시행 주체인 지자체의 부당한 대우에 노출되기 쉽다.
완성차 대기업은 고객에 전기차를 인도하는 즉시 환경부 보조금(1500만원)과 지자체 보조금(100만~900만원)을 받는다. 충전기 업체는 공사를 완료했음에도 대금처리 지연이 관행처럼 굳어버렸다. 다른 지자체에도 지연 사례가 있지만 6개월이 넘은 건 서울시가 처음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충전기 중소기업 6곳과 전기차 보급사업 협력 양해각서(MOU)까지 교환하며 충전기술 개발·제도 개선 등 상생을 약속했다.
하지만 결제 관련 부당대우는 계속되고 있다. 충전기 공사를 끝마친 상태에서 제품 단가를 다른 최저가입찰 때와 맞춰 부당하게 낮추려는 시도도 감지되고 있다. 서울시는 이달 초 전기차 보급 주무부처 환경부로부터 전기차 민간보급 사업 실태 조사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전기차 보급이 가장 활발한 제주도 역시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실정이다. 제주는 도내 기업만 전기차 충전기 보급 사업에 참여하도록 규정돼 있다. 충전기 개발·제조업체 등 도내 기업을 키우겠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전기차 민간보급 3년이 지나도록 충전기 기술 개발에 나선 기업은 1~2곳에 불과하다. 대부분 육지 중소기업 제품을 가져와 유통사업에만 주력하고 있다.
또 제주는 지난해 말부터 제주테크노파크에 전기차 충전기 보급과 관리를 맡겼다. 늘어나는 충전기 물량을 제주도청에서 관리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충전기 업체는 ‘시어머니’가 하나 더 생겼다고 토로한다. 충전기 수천기가 제주에 설치되면서 별도 관리 기관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업무처리 단계가 늘어난 만큼 종전보다 사업적 부담이 크다는 불만에서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