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업이 연구개발(R&D) 투자로 혁신을 도모한다. 그러나 대부분 회사 안에 머물러 있다. 밖을 보지 못하는 셈이다. 이미 기업이 따라 오지 못할 만큼 빠른 혁신이 외부에서 이뤄지고 있다. 혁신을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R&D 자금이 기업 외부에서 투자된다는 점을 알아야한다.

EMC의 기업형벤처캐피털(CVC) ‘EMC 벤처스’를 이끄는 스콧 달링 수석부사장은 “기업이 성공하려면 밖에서 일어나는 R&D를 추구하고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며 “업계를 분열시키고 파괴시키는 일(혁신)을 감지했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라고 말했다.
달링 부사장도 눈을 밖으로 돌렸다. 그는 지난 2012년 EMC의 익스트림IO 인수 주역이었다. 기존 스토리지 시장에서 좀 더 빠르고 혁신적 제품을 내놓기 위한 전략이다. 이스라엘의 한 기업을 인수한 EMC는 여전히 세계 스토리지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인수합병(M&A)에는 성공 사례도, 실패 사례도 있다. 달링 부사장에게도 투자 과정과 출구 전략이 지루한 싸움이다. 익스트림IO를 인수하기 전 이미 2009년부터 투자에 들어갔다. 단순히 수익성을 내기 위한 벤처캐피털(VC) 투자가 아니다. 그는 “회사를 인수할 때는 기술 단계에 있는 첫 단계부터 관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익스트림IO는 EMC퍼더레이션(연합) 전체를 생각한 M&A였다”고 평가했다. 오랜 시간 동안 앞으로 EMC 혁신에 주축이 될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노력했다는 의미다.
EMC 연합과 연계해 협업하고 서로 문제점을 해결하며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달링 부사장에게는 중요했다. 이런 전략은 EMC연합의 새 성장 동력이 된 VM웨어·피보탈 운영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올 1분기 EMC 스토리지 매출은 전년도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VM웨어와 피보탈은 각각 12%, 8%씩 성장하며 주목받았다.
익스트림IO 사례처럼 외부 R&D 투자는 달콤하면서도 치명적이다. 어느 정도 성숙한 기업을 인수하는 요즘 세태에서 위험(리스크)은 더욱 크다. M&A에 수십억달러 이상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얼마나 외부 혁신을 기업 안으로 잘 흡수하느냐가 관건이다. 달링 부사장은 M&A 투자와 성공은 기업 문화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외부 R&D를 받아들이는 데 마음을 열어야 한다. 어떤 기업은 내부 R&D 텃세가 심하다. 의도치 않게 외부 혁신을 파괴하는 경우도 있다. 기업 M&A와 CVC가 성공하려면 기업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달링 부사장은 이를 “문화는 전략을 잡아먹는다(Culture Eats Strategy for Breakfast)”고 표현했다. 아무리 뛰어난 사업 전략이 있어도 문화가 맞지 않으면 기업 간 합병이 어렵다는 의미다.
재능이 있는 많은 벤처를 M&A 하는데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달링 부사장은 “벤처 M&A는 받아들이는 기업 문화가 결정적 요소”라며 “기업을 강화시키기 위해 벤처 가치를 높이고 위험이 큰 벤처를 수용할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폐쇄적 기업은 혁신을 꿈꿀 수 없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