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뱅크 4.0` 준비하는 중국, 금융 시장 개방 `충격 카드`

중국이 다음 달부터 은행과 카드 결제 시장을 외국 기업에 전격 개방한다고 밝혔다. 중국정부 발표는 글로벌 기업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내 금융권에도 중국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인구 13억 규모의 중국 금융 시장이 개방되면 세계 결제 시장은 중국 영향권에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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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중국 카드결제 시장은 중국인민은행이 2002년 설립한 국영기업 유니온페이가 독점했다. 외국 카드사와 은행 카드 발급, 전자결제에서 유니온페이 지위는 막강하다. 중국 정부는 오는 6월부터 연간 73조달러 규모의 중국 결제 시장에 비자나 마스터카드 등이 진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푼다.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2012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중국 신용카드 결제사업을 국영기업이 담당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미국이 제기한 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 전자결제 시장은 개방이 불가피해졌다. 이는 한국 금융권에 또 하나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 거대 기업의 결제 시장 독점과 장악력에 휘말릴 가능성도 충분하다.

◇중국, 스마트 금융 시장에 만리장성 쌓기

중국이 보수적 관행을 깨고 결제 시장을 개방한 것은 강력한 자금력과 현지 기업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유니온페이를 비롯한 세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이 급성장하고 있다. 중국 결제 시장 개방에도 진출을 위해서는 자본금 10억위안 이상, 신청일로부터 1년 전 모기업의 총자산이 20억위안 이상 요건을 갖춰야 한다. 당장 진입한다 해도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핵심 수수료율은 유니온페이가 최고 1.25%, 비자와 마스터 등 외국 기업이 평균 4%에 달해 해결과제도 산재한다. 수수료율을 낮춘다 하더라도 현지 네트워크를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결제 시장 구조는 신용카드사, 카드 발급은행, 전표매입사로 구성된다. 이들 현지 금융사의 긴밀한 협력관계 없이는 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처럼 강력한 자신감을 필두로 중국은 전자결제 시장을 개방했다. 종속될지 새로운 오아시스를 찾을지가 이제 세계 금융사의 숙명으로 다가오고 있다.

중국은 이미 막강한 자본력과 유커(중국 관광객)를 앞세워 세계 모바일 지불결제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국이 중국의 테스트베드로 근거리무선통신(NFC)과 모바일 결제 기반 플랫폼 종속국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됐다.

최근 중국은 한국보다 한발 앞서 다이렉트 뱅킹을 전사적으로 도입했다. 비대면 채널을 통한 효율적인 스마트금융 생태계 조성에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미 19개 은행이 다이렉트 뱅킹 사업에 나섰고 성공적인 수익구조도 만들고 있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한국과 비슷하다. 저금리 기조로 인해 예대마진이 줄어 고객 눈높이에 맞춘 새로운 혁신형 스마트금융 모델이 필요하다. 고객이 업무를 처리하러 오기만을 기다리는 뱅크 2.0 시대를 종식하고 은행이 주도적으로 고객을 찾아나서는 3.0 시대를 너머 빅데이터 기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뱅크 4.0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강력한 정부 지원 아래 중국 금융사뿐만 아니라 IT기업도 전 세계 결제 시장 독식에 나섰다. 이 같은 행보에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 한국을 찾는 유커는 비자나 마스터 로고가 찍힌 국제 카드 대신 스마트폰으로 결제를 시작했다.

최근 중국 알리페이는 한국 카드사가 수년이 걸린 모바일 결제 인프라 확충을 두 달 만에 완료했다. GS25, 세븐일레븐 등 국내 편의점 2만여곳에 모바일 결제 인프라를 구축했다.

소액결제가 중심인 편의점은 국내 소비패턴을 가늠하는 종착지로 불린다. 1000원 미만 소액결제가 가장 많고 생활밀착 업종이다 보니 가맹점 평균 결제건수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티머니 발급사인 한국스마트카드와 협력해 국내 8만여개에 달하는 유통 가맹점도 확보했다. 일반 편의점은 물론이고 국내 온라인 쇼핑몰, 롯데리아, 맥도널드 등 패스트푸드점에 이르기까지 수십만개에 달하는 가맹점에서 알리페이를 쓸 수 있게 됐다.

온라인에 이어 오프라인 모바일결제 시장에까지 알리페이가 진출하면서 오프라인 상권에 중국발 모바일결제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알리페이 실명을 인증한 회원 규모만 약 3억명이다.

국내 토종은행과 카드사가 핀테크 기반 모바일결제 사업에 소모전만 지속하는 상황에서 알리페이의 이 같은 공격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수적인 국내 은행과 카드사는 투자보다는 ‘눈치보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남이 하면 따라하는 ‘2등 전략’이 새로운 핀테크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는 형국이다.

◇알리페이 이어 유니온페이, 텐센트 광폭 행보

알리페이 한국 진출은 시작에 불과하다. 중국 전통 강호인 유니온페이(은련), 텐센트 등이 국내 모바일결제 시장에 합류했다. 외형적으로는 국내 금융사와 협력사업을 펼치는 모양새지만 궁극적으로 인프라 선점에 이은 모바일결제 표준을 중국의 입맛에 맞춘다는 선전포고다.

은련 모바일결제 인프라와 영향력은 알리페이를 능가한다.

은련은 한국에 모바일결제 인프라 확충에 나서며 알리페이에 맞불을 놓았다. 최근 8000개가 넘는 GS25에 NFC방식 결제 서비스 ‘퀵패스(QuickPass)’ 인프라를 보급했고 동대문 두타 쇼핑몰에도 진출했다.

텐센트도 하나은행과 손잡고 모바일 결제 시장 진출을 본격화한다. 이들 중국 기업이 추진 중인 모바일결제 사업은 전략적이고 치밀하다. 적과의 동침도 시장 선점을 위해서라면 마다하지 않는다. 은련은 미국 애플과 협력해 중국에서 애플페이 론칭 파트너로 낙점됐다.

은련카드를 통한 거래액은 41조위안(7400조)을 넘어섰다. 전 세계 1위 결제사인 비자카드 거래액은 46조위안으로 은련이 턱밑까지 추격한 상황이다.

은련이 모바일결제 부문 ‘다크호스’로 떠오른 이유는 강력한 결제 인프라와 세계 최대 해외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어서다. 애플, 구글, 삼성 등이 중국 진출 핵심 파트너로 은련을 지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현지 카드 수 46억장, 은련카드 소지자는 9억명을 넘었다. 결제 인프라가 되는 판매관리시점(POS) 단말기만 1600만대, 카드 사용금액 41조위안으로 미국 등 다른 국가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국 1990년대 발상, IT강국 벗어나야

중국형 결제가 익숙한 사용자 경험을 창출하고 많은 소비자가 결국에는 보다 편리하고 익숙한 중국 간편결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모바일 결제 종속이 현실화되고 있다. 중국기업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결제 종속을 현실화하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말이다.

정부 또한 각종 규제를 풀어 이 같은 국제화 추세에 걸맞은 뱅크 4.0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어떤 전략과 사업 모델을 선택하든 간에 성공을 꿈꾸는 모든 토종 금융사는 새로운 자세와 장비를 갖춰 항해에 나서야 한다. 중국 개방이라는 새로운 결제 생태계 앞에 사업 차별화를 꾀해야 한다.

정부가 새 판을 깔아야 한다. 한국은 핀테크를 체계적으로 육성할 컨트롤타워가 없어 눈앞으로 다가온 신(新)금융시대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차세대 국가 먹거리를 고민하는 미래창조과학부나 산업통상자원부 등 타 부처 역시 ‘금융’은 아예 손을 놓고 있다.

아이디어로 무장한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도 금융업에 참여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새로운 사업모델은 인허가에만 수개월에서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이 사이 중소기업들은 사업을 포기하기 쉽다. 금융업은 또 엄격한 자본관리 규제를 받는다. 아이디어로 IT와 결합한 금융모델을 개발해도 영세한 벤처기업이라면 그 사업을 펼치기 쉽지 않다.

우리 금융업도 이제는 ‘금융+IT 빅뱅’ 새 흐름을 타고 도약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융회사와 금융 신기술 스타트업과의 연계와 투자, 금융사와 IT기업 간 업무제휴, 창조적 아이디어의 금융스타트업 육성 등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규제 일변도 금융정책을 육성과 사후 규제로 전환해 새로운 시도를 늘려야 한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