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자신문인터넷 소성렬기자] 그림을 시작할 때나 글을 쓸 때나 처음 마주하게 되는 종이의 하얀색은 늘 희망적이었다. 그 숨 막히는 흰 여백에는 사실 완성될 작품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살아가는 일이 곧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그 하얀 자취를 믿고 끄집어내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놓아버리면 사라지지만, 성실한 노역을 통해 작품으로 완성될 수도 있는 것. 다른 말로 굳이 번역하면 ‘희망’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얀 자취> 서문 중에서
안경과 치아교정기를 하고 웃고 있는 소녀 ‘Sealed smile’ 시리즈로 유명한 화가 김지희의 산문집 <하얀 자취>가 출간됐다. 국내와 해외에서 150여회의 전시를 가지며 꾸준히 글을 써 온 화가 김지희는 유려한 필치와 작가 특유의 섬세한 표현력으로 한 폭의 그림 같은 글을 책으로 엮었다.

<하얀 자취>는 한 인간이 겪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작가만의 시선으로 풀어낸 기록이다. 작가는 자연과 일상이 주는 보편성 안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임을 말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용기, 비교에서 벗어나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 열정과 희망을 잃지 않는 길을 여행과 예술, 삶 주변의 소소한 대상을 통해 깨우친다.
특히 동양화의 5가지 색 이름인 선황, 지분, 백록, 양홍, 호분으로 나누어진 챕터에는 한 챕터를 아우르는 단편소설이 담겨있어 눈길을 끈다. 글과 함께 ‘Sealed smile’ 시리즈를 비롯한 작가의 감각적인 작품들도 함께 수록되어 소장가치가 높다. 작가는 그림과 글을 통해 우리는 모두 피고 지는 순환의 존재임을 말하며, 독자를 향해 가장 자신다운 꽃으로 피어나고 소멸하는 것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작가가 말하는 하얀 자취는 희망을 의미한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 전 하얀 종이에서 설레임을 느낀다고 말한다. 흰 화면에 숨어있는 하얀 자취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삶을 향한 성실한 노력을 통해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다. 삶과 예술을 아우르며 오늘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책 <하얀 자취>를 통해 일상 속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전자신문인터넷 소성렬기자 hisabis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