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학 현미경은 지난 100여년 간 의료 진단 및 치료 목적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돼 왔다. CT, MRI, 초음파 영상 등의 의료 진단장비에 비해 높은 해상도를 가지고 있어 초기 단계의 암세포 진단, 세포 단위의 극미세 구조 연구 등에 효율적이다.
하지만 빛이 피부 조직과 같은 복잡한 구조를 통과할 때는 왜곡되기 때문에 생체 조직 속 깊은 곳에 있는 물체 영상을 획득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고해상도 광학 현미경이 관찰 가능한 생체 조직 내부 깊이는 수십 마이크론 두께로 제한되고, 생체 조직 깊은 곳의 고해상도 영상을 얻기 위해 얇은 두께의 생체 조직 박편을 잘라내 관찰하는 수밖에 없었다.
생체 조직 같은 복잡한 매질 내부에서 빛은 여러 번 무작위하게 진행방향을 바꾸는 다중 산란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빛이 가진 영상 정보는 잃어버린다. 하지만 비록 적은 양이더라도 다중 산란을 겪지 않고 조직 내부 영상정보를 간직하고 있는 단일 산란 성분의 빛, 즉 단일 산란파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생체 조직 1㎜ 깊이의 영상 정보를 가지고 나오는 단일 산란 성분의 빛은 초기 입사시킨 빛의 세기에 비해 100억분의 1 정도로 줄어든다. 이러한 극소량의 단일 산란만을 따로 모을 수 있거나 증폭시킬 수 있다면 생체조직 깊은 곳의 광학 영상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고려대 최원식 교수팀은 단일 산란파가 가지는 고유한 성질을 이용해 다중 산란을 배재하고, 단일 산란파만 모을 수 있는 광학 현미경(CASS 현미경)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단일 산란파의 고유한 성질을 활용했다. 빛은 조직 내부로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오는 시간이 목표 깊이에 의해 결정된다. 시분해 측정을 통해 목표 깊이에 해당하는 시간에 카메라로 들어오는 빛만 모으면, 다른 시간에 카메라로 측정된 다중산란 성분의 빛을 제거할 수 있다.
연구팀은 시분해 측정을 통해 목표 깊이에서 돌아오는 빛만을 골라냈고, 간섭 현미경을 통해 빛의 운동량을 측정함으로써 빛의 조직 내에서의 운동량 변화를 측정했다. 생체 조직 모형을 통해 현미경 성능을 테스트 한 결과 기존 반사 현미경에 비해 10배 이상 깊은 1㎜ 깊이에서도 고해상도 영상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는 고해상도 반사 현미경 영역에서 기록한 세계 최고 심도다.
이번 연구결과는 암의 조기 진단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암세포의 약 80%는 사람 피부나 장기의 외피에서 1~3㎜ 깊이에 있는 표피세포에서 발생한다. 또 초기에 크기가 수 마이크로미터인 암세포의 세포핵이 커지면서 세포분열을 통해 나중에 덩어리(용종)로 발전한다.
이러한 초기 암세포 발현은 기존에 개발된 의료 영상방법으로는 측정이 불가능하며, 암세포가 덩어리를 이루어 크게 자라난 이후에 용종 등의 형태로 나타날 때에 이르러서야 측정이 가능했다. 또 진단된 암세포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전이된 작은 암세포 조직을 발견하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이번에 개발한 광학 현미경은 초기 단계의 암세포 진단 및 치료에 있어서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원식 교수는 “광학 현미경 연구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이미징 깊이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면서 “다양한 의료영상, 진단장비 등에 활용할 수 있으며, 기존에 불가능했던 병변의 진단 및 치료 가능성을 열어 삶의 질 향상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네이처 포토닉스(Nature Photonics)’ 10일자 온라인에 게재됐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