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당초 계획보다 대폭 줄어…기업참여 유도 어려울듯
우리 정부의 시스템반도체 산업 육성전략 핵으로 간주돼 온 ‘모바일 중앙처리장치(CPU)’ 국산화 사업이 용두사미로 전락할 우려에 처했다. 야심차게 출발한 CPU 핵심칩 국산화 사업이 정부의 예산 축소와 연구개발(R&D) 이후 사업화 과정 불확실성 논란으로 초기단계부터 불안한 출발을 보이고 있다.
19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모바일 CPU 코어 국산화에 투입될 정부 예산은 3년간 90억원 규모(매년 30억원)로 확정됐다. 당초 5년간 350억원(정부 250억원, 민간 100억원)을 투입한다는 게 산업통상자원부의 방침이었지만 실제 정부 투입예산은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의 ‘국산 CPU 코어 활용 SoC 개발’ 사업을 공고하고 참여기업 모집에 들어갔다.
모바일 CPU 코어 국산화 사업은 ARM에 종속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의 핵심 부분품을 우리 기술로 대체하는 것이 핵심이다. 모바일 AP는 스마트폰, 생활가전 등에 탑재돼 연산과 명령어 처리 등 두뇌 역할을 담당하는 주요 반도체다. 미래산업으로 주목되는 사물인터넷(IoT) 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AP 탑재 전자기기가 늘어나므로 그 효용성 및 중요성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정부는 지금의 특정 해외기업 기술종속 구조를 탈피하고 국산 기술의 자생력 및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사업을 기획했다. 모바일 CPU에서만 매년 우리 기업이 3500억원 이상의 로열티를 지급하는 문제를 극복하고, AP 국산화로 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 기술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IoT와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가 등장하면서 중소형 CPU 수요가 늘어나는 데 대비하는 차원도 있다.
그러나 당초 계획과 달리 관련 예산은 심의 과정에서 대폭 축소됐다. 사업이 시작되는 첫해부터 ‘예산배정 불발’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정부 사업에 참여하는 사업자(기업·연구소)는 △에이디칩스 ‘이스크(EISC)’ △전자부품연구원 ‘멘사(MENSA)’ △ETRI ‘알데바란(Aldebaran)’ △KAIST와 특허청의 ‘코어에이(Core-A)’ 등 국산 CPU 코어를 이용해 시스템 반도체를 개발해야 한다. 하지만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기업이 R&D와 상용화에 참여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사업 기획 초기부터 성공적인 R&D는 물론이고 R&D 이후의 상용화 과정에도 꾸준히 공을 들여야 한다고 업계는 주문해왔다. 주도권을 해외 일부기업이 장악한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대등한 기술력과 사업성을 확보하려면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AP 개발 및 상용화에 발 빠르게 나선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기업도 이에 같은 의견이었다.
시스템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정부 지원이 감액된 데다 지금 분위기로는 국산 CPU 칩 개발에 성공한다고 해도 실제 수요를 얼마나 일으킬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며 “지원과 수요가 명확하지 않아 많은 팹리스 업체가 사업화까지 이어질지 우려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예산이 일부 감액됐지만 시스템반도체 육성과 한국형 CPU 국산화 사업에는 앞으로도 많은 정책 지원이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부 관계자는 “모바일 CPU 코어를 국산화해야 거대한 IoT 시장을 우리 기술로 대비할 수 있다”며 “예산 규모가 줄었다고 해서 사업 중요성을 낮게 평가하는 것은 아니며 사업 추진상황에 따라 추후 예산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