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과학자들이 전자의 스핀 소용돌이 현상을 처음으로 규명하고, 이를 제어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이기석 UNIST 신소재공학부 교수와 임미영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연구원, 홍정일 DGIST 신물질학과 교수(이하 이 교수팀)는 나노 크기의 자성체 배열에서 발생하는 스핀 현상을 규명해 스핀 소용돌이를 제어할 방법을 찾고, 기존 연구에서 간과했던 카오스 현상을 발견했다.
‘스핀트로닉스’ 연구에 획기적 전환을 가져올 이 연구 성과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17일자 온라인판에 실렸다.
스핀트로닉스(spintronics)는 전자의 양자 상태인 스핀(spin)에 전자공학(electronics)을 합성한 용어다. 자기장의 영향 아래서 전자는 이동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스핀 현상을 나타내는데, 이처럼 전자의 이동이 아닌 ‘전자의 운동(스핀)’을 이용해 정보를 전달하거나 저장하는 기술을 말한다. 특히 현재의 메모리 반도체 D램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판독할 수 있어 차세대 메모리 소자 기술로 꼽히고 있다.
스핀트로닉스를 실현하려면 나노 자성체에서 전자의 자기적 방향(양자 상태), 즉 전자의 스핀을 자유롭게 제어해 정보를 저장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스핀을 결정하는 물리적 원인을 찾지 못했다.
이 교수팀은 원 모양의 나노 자성체 배열에서 나타나는 ‘스핀 소용돌이(spin vortex)’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했다.
스핀 소용돌이는 전자의 자기적 방향이 시계 방향 또는 반대 방향으로 태풍처럼 회전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태풍의 눈 같은 핵이 있고, 핵은 위나 아래 두 방향으로 형성된다.
이 교수팀은 이러한 스핀 소용돌이의 회전과 핵의 형상을 제어하는 방법으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
기존 스핀트로닉스 연구는 원형 자성체의 구조에 변형을 가하면 나노 자성체 1개에서 생긴 스핀 소용돌이의 회전 방향을 완벽히 제어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이 교수팀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비대칭성 구조를 갖는 나노 자성체를 여러 개 배열할 때 일어나는 현상을 방사광 가속기 현미경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연구했다.
나노 자성체 배열 간격을 200nm, 500nm, 800nm로 나눠 실험한 결과, 200nm일 때 스핀은 시계 방향으로, 800nm일 때는 반시계 방향으로 나타났고, 나노 자성체 사이의 간격을 조정하면 일정한 스핀 방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기석 교수는 “스핀 소용돌이 형성의 물리적 근본 원인을 밝혀낸 것으로 나노 자성체 배열에서 스핀 소용돌이 상태를 제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은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서 또 하나의 성과는 나노 세계에서 나타나는 카오스 현상의 발견이다.
같은 실험에서 나노 자성체 배열 간격이 500nm일 때는 스핀 방향의 일관성이 사라졌다. 이 교수팀은 500nm 간격의 실험의 반복적으로 실시해 초기 값의 미세한 변화에 따라 스핀 방향이 예측할 수 없이 달라진다는 결과를 시뮬레이션을 통해 통계적으로 입증했다. 운동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법칙으로 알려진 카오스 현상이 나노 자성체의 스핀 방향 형성에도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한 최초의 연구 성과다.
이기석 교수는 “스핀트로닉스의 기반이 되는 전자의 스핀과 스핀 소용돌이 현상에도 카오스 이론과 같은 기본적인 물리법칙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며 “이번 연구결과는 수십에서 수백 만 개의 나노 자성체로 구성되는 나노 스핀트로닉스 소자 구현에 기여할 것”이라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해외우수연구기관유치사업 및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울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