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표면의 약 70%는 물로 덮여 있다. 물은 산소와 함께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한 필수 요소로 꼽힌다. 지구는 물과 산소가 풍부해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다. 과학자들이 외계 생명체가 사는 행성을 찾기 위해 물의 존재와 흔적을 찾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런데 지구의 물은 어디에서 왔을까? 지구에 원래부터 있었다면 다른 행성에서는 왜 찾기 어려울까. 과학자들은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얼마전 유력한 가설 중 하나인 혜성 유래설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유럽우주국(ESA)이 지난 2004년에 발사한 혜성 탐사선 ‘로제타’호가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이하 혜성 67P)’에 접근해 물을 수집하고, 분석 정보를 지구로 보내왔다. 하지만 분석결과 혜성 67P의 물은 지구의 물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의 물이 혜성에서 왔을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지구의 많은 물은 어디서 왔을까=지구가 처음 생겨났을 때는 물과 대기가 없었다. 언제, 어떻게 지금처럼 많은 물이 생겨났는지는 과학계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지구에 존재하는 물의 기원에 대해 많은 이론을 발표했다. 아직까지는 어느 이론도 증명되지 않은 가설일 뿐이다.
물의 기원에 대한 오래된 이론 중에 ‘지구 속에서 왔다’는 것이 있다. 지구 형성 초기에 무수한 화산 폭발을 통해 지구 암석 속에 있던 물이 빠져 나왔고, 이것이 증발해 수증기가 됐다. 그리고 대기 중에 수증기가 포화되면서 비가 되어 지표면에 내렸다는 이론이다. 수백년 이상 오랜 기간 동안 내린 비로 지표면의 낮은 부분이 물로 채워졌고, 이것이 초기 바다의 기원이라고 설명한다. 1894년에 처음 나온 이론으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가장 유력한 가설 중 하나로 평가돼 왔다.
약 100년이 지난 1986년, 지구의 물이 외계 우주에서 유래했다는 이론이 제기됐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루이스 프랭크 교수는 물이 우주 혜성에서 왔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물과 얼음으로 구성된 혜성이 지구에 끊임없이 떨어지면서 지구에 물을 공급한다는 논리다.
당시 프랭크 교수는 “현재도 지구에 1분에 20개가 넘는 작은 혜성이 떨어지며, 혜성은 물과 얼음덩어리로 구성돼 있다”고 밝혔다.
지구로 들어온 혜성은 대기권에서 수증기로 변하고, 비가 되어 지구에 내린다는 가설이다. 1분에 지구에 유입되는 물의 양이 100톤이 넘는다고도 했다.
당시 그의 주장은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이후 위성사진에서 프랭크 교수가 주장한 우주 얼음덩어리가 확인되면서 주목받고 있다. 그의 가설은 지구 밖 외계의 물이나 생명체 존재 가능성도 뒷받침한다.
물의 우주 유래설 중에는 혜성이 아니라 소행성 충돌로 인해 물이 생겼다는 이론도 있다. 물이 풍부한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 바다가 생겨났다는 가설이다. 수증기를 내뿜는 듯한 소행성의 사진 등이 촬영되며 소행성 충돌설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로제타 ‘지구의 물, 혜성의 물과 다르다’=이번에 로제타호가 보내온 정보는 지구 물의 기원설 중 유력한 혜성 유래설과 다른 결과다.
로제타가 수집한 정보를 분석한 유럽우주국의 카트린 알트웨그 베른대 교수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지구의 물은 혜성의 물과 달랐고, 지구에 물을 가져온 것은 혜성이 아닌 소행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혜성 67P에는 물이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물을 구성하는 성분이 지구의 물과 달랐다. 물 분자는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가 결합해 만들어진다. 수소에는 일반적인 수소와 무거운 중수소가 있다. 그런데 혜성 67P의 물은 지구상의 물보다 중수소 비율이 3~4배 높았다. 이는 지구의 물과 혜성 67P의 물은 종류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중수소 비율이 높은 거의 태양계 시초에 가까운 시기에 매우 낮은 온도에서 형성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태양계 혜성들의 물은 대부분 중수소 비율이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지구의 물이 혜성에서 기원했다는 이론은 힘을 잃게 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로제타호가 보내온 정보가 기존 학설을 완전히 뒤엎을 정도는 아니라는 의견도 내놓았다.
프랑스우주국(CNES)의 로제타 연구원 프란시스 로카르는 “중수소 비율은 혜성마다 다양하다”며 “기존 학설을 뒤흔들었다기보다 조금 더 복잡하게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010년 ‘하틀리2’ 혜성의 물 성분을 분석한 결과 지구의 물과 일치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당시 조사결과는 지구의 물이 혜성에서 왔다는 주장에 믿음을 더해줬다.
하틀리2 혜성은 해왕성과 명왕성 밖에 존재하는 카이퍼 벨트에서 온 혜성이다. 혜성 67P 역시 카이퍼 벨트에서 온 혜성으로 분류되는 만큼 비슷한 지역에서 온 혜성이라도 다른 물 성분을 보유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 메릴랜드대 마이클 아헤른 교수도 “로제타호가 보내온 정보가 놀라운 결과이긴 하지만 (지구 물의 기원으로) 혜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며 “물이 다른 유형의 혜성에서 왔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결국 지구 물의 기원을 찾기 위한 과학자들의 연구는 앞으로도 한동안 진행형이 될 전망이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