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문화거리 점령하는 화장품 매장 '씁쓸'

가로수길, 삼청동, 상수동까지 줄줄이 화장품 매장 문화거리 특색 사라져

개인 디자이너의 개성 있는 숍과 카페들이 생겨나면서 상권이 형성된 신사동 가로수길, 삼청동, 홍대 지역에 화장품 매장이 줄줄이 들어서면서 지역 특색이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준다.

디자인 문화의 거리 ‘가로수길’, 대기업 경쟁으로 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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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길 벨포트 1호점(위측), 가로수길 클라란스 60주년 팝업스토어(아래측)

명동에 이어 이미 대표적인 화장품 거리로 꼽히고 있는 신사동 가로수길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개인 디자이너의 소규모 패션매장과 공방, 갤러리 등이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거리였다.

강남지역의 ‘문화거리’로 젊은이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대기업 프렌차이즈 브랜드의 플래그십 매장들이 들어서며 초대형 상권으로 변모했다.

가로수길은 패션 뷰티 아이템을 홍보하기에 제격인 장소로 주목을 받으면서 이니스프리, 미샤, 더페이스샵, 토니모리, 스킨푸드, 바닐라코, 에스쁘아, VDL, 클럽클리오 등 브랜드숍과 올리브영, 왓슨스, 롭스 등 H&B숍, 심지어 키엘, 록시땅, 빌리프, 숨37 등 주로 백화점에서 유통되는 브랜드의 단독 매장들이 줄지어 입점해 있다.

특히 크리니크, 클라란스, 에스티로더, SK-II 등 유명 수입 브랜드들이 팝업스토어를 주기적으로 오픈하면서 ‘테스터 지역’으로 부상했고 올해는 해외 화장품의 편집샵인 벨포트가 1, 2층 규모로 오픈해 화제가 됐다.

이처럼 대기업들이 대거 진출하고 경쟁구도를 가지면서 임대료는 치솟기 시작했고 가로길의 터줏대감이었던 디자인숍들은 골목(세로수길)으로 밀려나거나 자취를 감추게 됐다.

올해 11월 기준으로 가로수길 대로변 팝업스토어의 경우 임대료는 33㎡(10평) 매장이 보증금 10억 원, 월세 2500만 원의 기록적인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세로수길의 경우 115.5㎡(35평) 기준 보증금 1억 6000만 원, 월세 1100만 원으로 형성돼 있다. 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가로수길은 지난 2009년과 비교해 무려 8배 가량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입장에서 가로수길은 제품 홍보효과와 매출 상승을 기대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여겨지겠지만 대규모 자본의 유입은 가로수길의 특성을 퇴색시켰다는 의견이 많다. 신진 디자이너들이 압구정 로데오의 높은 임대료에 부담을 느껴 옆동네인 신사동에 숍을 내고 활동했던 가로수길 문화의 거리가 상업적으로 변질된 점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전통과 현대의 어우러짐 ‘삼청동’, 화장품 매장으로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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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문샷 1호점(위측), 삼청동 키엘 플래그 스토어(아래측).

강북의 삼청동까지 화장품 업체들에게 점령 당하고 있다.

삼청동은 경복궁 동북 방면에서 북악산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갤러리숍과 이색적인 디자이너 상점, 전통 음식점과 찻집 등이 모여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거리였다. 더불어 북촌 한옥마을과 연결되어 있어 국내외 관광객들 사이 볼거리가 많은 인기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2011년 국내 브랜드숍 더샘과 미국 브랜드 키엘이 들어선 이후 관광객을 소비자 타겟으로 한 화장품, 뷰티 관련 로드숍이 연이어 오픈하면서 현재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 아리따움, 빌리프, 더샘 등 국내 브랜드를 비롯해 키엘, 러쉬 등 해외 브랜드까지 중앙로와 골목 상권 곳곳에 위치해 10개를 넘어섰다.

지난 10월에는 YG엔터테인먼트가 화장품 브랜드 문샷을 론칭하면서 삼청동에 지상 3층 규모의 단독매장을 오픈했고 영국 유기농 화장품 브랜드 닐스야드 레머디스도 국내 첫 단독 건물 매장을 선보이면서 화장품 쇼핑의 신규 지역으로 급부상했다.

이에 따라 삼청동의 고즈넉한 멋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삼청동을 찾은 김선미(28)씨는 "삼청동은 특색 있는 카페와 갤러리를 둘러볼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최근은 강남, 명동과 같은 서울 시내 주요 상권과 별 차이가 없어 졌다”며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매장을 열고 싶은 기업들의 마음도 이해하지만 그 거리의 특유의 멋을 해치치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삼청동 일대 상가 월세는 최근 400만~500만원까지 뛰었고 임대료가 치솟으면서 신진 디자이너들의 매장이 설 곳도 사라지고 있다.

삼청동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삼청동 대로변에 위치하고 전용면적이 100㎡ 정도의 매장은 보증금 1억원에 월 480만원 정도"라며 “몇 해 전까지만해도 삼청동은 개인 디자이너들이 의류, 액세서리 등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곳이었는데 디자이너 매장이 한달에 1~2곳씩 문을 닫고 있다”고 밝혔다.

홍대 이어 상수동 골목까지 화장품 매장으로 변모하나?

홍대역 부근부터 놀이터 지역에는 이미 각종 화장품 브랜드숍의 각축전으로 변한지 오래다. 클럽과 대기업 패션 브랜드로 시끌벅적한 홍대지역을 벗어나 조용한 문화를 즐기고자 기존의 주택가였던 상수동길은 아기자기한 액세서리숍과 옷가게, 카페 등이 들어서면서 여유롭고 낭만적인 거리를 형성했다.

그러나 최근 합정역에서 상수동길 초입지에 새로 들어선 건물에 바닐라코 매장이 입점하고 극동방송국 근처에 잇츠스킨 매장이 오픈하면서 상수동마저 상업지역으로 변모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실제로 각 매장마다 개성있는 인테리어를 뽐내고 있는 상수동길에서 바닐라코 매장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상수동 홍대스타일부동산 대표는 "최근 1~2년 사이 상수동길이 급격히 유명세를 타며 매매가 와 임대료가 많이 상승했다"며 "특히 임대료의 경우 1층 66.1㎡(20평) 기준 200만 원에 달한다. 최근에 임대료가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고 유동인구가 몰리게 되면 자급력이 있는 기업들이 앞다퉈 진출하려 들고 매장 임대료는 상승하게 된다. 높은 임대료에 부담을 느끼게 된 개인숍들은 가게 문을 닫게 되고 이에 따라 지역 특유의 분위기가 회손 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기업이 소비자 유동인구에 따라 매장을 오픈하는 것이 당연한 운영 방식이겠지만 서울의 모든 상업지역이 모두 동일한 모습을 띄게 되는 것은 장기적으로 서울 관광산업에도 좋지 않은 결과를 줄 것이다. 따라서 정부에서 문화 특수거리를 지정하고 상업 브랜드의 입점을 제한해 보호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코스인코리아닷컴 이나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