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CEO] 공장 자동화 시스템계의 홍일점, 지은희 비전랩 대표(인터뷰)

[이버즈-황민교 기자] 공장에서는 물건을 찍어내는 매순간이 금전적 가치로 환산된다. 때문에 제조업계에서는 생산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공장 자동화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고 있는 추세다.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사실 핵심은 이름 속에 숨겨져 있다. 자동화, 즉 기계에 IT를 입혀 생산성을 높이는 거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것들, 이를테면 스마트폰과 상당수의 식품, 타고 다니는 자동차 속 부품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설비 수준에 따라 생산 품질이 확연히 달라지는 만큼 이를 담당하는 개발 업체에는 높은 기술력이 요구된다. 2009년에 설립한 비전랩(Vision-Lab)은 업계에서 탄탄한 기술력으로 통하는 회사 중 하나.

경기 광명시에 위치한 비전랩 본사를 방문하자 낯선 공구와 부품 사이로 지은희 대표가 등장한다.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궁금증이 떠오른다. 공장 자동화 시설계의 홍일점 지은희 대표에게서 업계와 사업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공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익힌 설계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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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랩은 산업용 자동화 설비를 공장에 맞춰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회사다. 이를 통해 생산과정을 체계화되고 효율성을 끌어올리도록 돕는다.

좀 더 가깝게 와 닿도록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비전랩은 마트에서 판매중인 인기 누룽지의 자동화 설비 시설을 맡았다. 12m 길이의 오븐이라고 생각하면 쉬운데 쌀을 불리고, 적당량을 놓아 펴주고, 그것이 오븐에 들어간 뒤 냉각하는 과정까지를 사람이 아닌 기계가 하도록 만들었다.

그간 스마트폰 부품과 같은 전기·전자 부문을 비롯해 다리나 고층빌딩에 들어가는 철강, 자동차, 식품 등 물건을 생산하는 모든 분야에 비전랩은 꾸준히 납품해왔다. 특히 세밀하고 정교한 검사가 필요한 부품의 경우에는 불량과 양품을 가리는 머신비전 검사기까지 솔루션에 포함한다는 설명이다.

공장 일, 좀 더 정확히 말해 기계라인을 설계하고 설치까지 하는 작업은 흔히 남성의 일로 여겨진다. 각종 기계 부품 속에서 등장한 지은희 대표의 모습이 다소 생경하게 느껴진 건 분명 이러한 편견이 작용한 탓이리라. 지 대표 역시 이러한 시선에 익숙한 듯 호탕하게 웃으며 지나온 우여곡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 대표는 대학시절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첫 직장은 기계회사였는데 2년 간 도면을 전자화하는 작업을 주로 맡았다고. 이후 설계까지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직접 공장을 쫓아다니며 부품 종류와 가공법을 익혔다. 눈으로 직접 봐야만 제대로 된 도면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한 기술력이 요구되는 분야이니만큼 일련의 과정을 익힌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을 테다.

그녀는 “처음엔 집에 거의 들어가지 못하고, 도면을 그리고 책 보면서 5~6년간 공부했어요. 컨베이어 벨트와 같은 간단한 것부터 설계하고 가공 후 물건 나오는 것까지 보니까 순서가 보이기 시작했고 자신감도 생기더라고요”라고 답했다.

지 대표는 “지금이야 그런 게 거의 없어졌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텃새라고 해야 하나? 기계 작업하는 데에 여자를 잘 안 끼워줬어요. 하지만 일하는 과정에서 전문용어가 나올 수밖에 없고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제시하면 편견을 깨더라”고 설명했다.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한 특별한 비결이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먼저다가서는 것이라 말한다.

“사실 이 쪽 업계는 십중팔구 저 빼고 남자라고 보면 되거든요. 어색해하시는 걸 아니까 제가 마음을 다 내려놓고 농담도 하고 살갑게 다가가요. 단, 일 얘기로 들어가면 단호해지죠. 그밖에는 여유 있게 하고요. 사람 대 사람, 업체 간 업체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우선입니다”

인터뷰를 할 때 역시 편안한 농담을 주고받다가도 일과 관련된 이야기에서는 눈빛이 반짝이는 그녀의 모습에서 긴 시간 쌓아온 단단한 성품이 느껴졌다.

◆긴 호흡의 공장 자동화 시설…`감동`과 `신뢰`는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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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대표는 “자동화기기는 아무리 짧아도 5년을 내다봐야 하는 호흡이 긴 사업이고, 때문에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향으로 협력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하던 중 지 대표는 ‘공장 자동화 설비’ 사업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단순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언급했다.

“사용자를 기준으로 세탁기, 냉장고, TV와 같은 제품은 돈을 ‘쓰게’하는 제품이지만, 생산기기같은 경우에는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에요. 이 말을 달리하자면, 우리가 아주 정확한 조건을 맞춰서 만들지 못하면 기계 자체를 아예 쓰지 못한다는 뜻이죠”

때문에 제작을 의뢰한 업체쪽과의 피드백과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생산자는 제조방식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회사는 그것을 받아서 기계화·자동화하는 역할을 한다. 어떤 사람에게 맡기냐에 따라 아웃풋의 완성도 차이가 크기 때문에 느끼는 책임감도 크다고. 오랜 시간을 공장과 함께 해온 그녀는 대답 하나하나에서 제조업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지 대표는 “생산하는 사람들은 생산만 신경 써야지 기계 신경 쓰면 일이 잘 안되지 않겠어요? 공장에서는 시간이 돈이고 하루 멈추면 손해 보는 금액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휴일과 시간 상관없이 쉴 때 미리미리 체크하고 예전에 독일, 해외에서 가져온 제품도 모두 관리해 드려요”라고 설명했다. 어떤 사업이던지 믿음과 감동을 줘야 한다는 게 지 대표의 철학이다.

이러한 철학은 시스템 컨설팅을 할 때도 고스란히 적용되는데, 단순히 비싼 설비를 추천하기보다는 회사의 규모와 상황에 맞게 돈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제시한다는 설명이다.

그녀는 “회사가 오래가야만 나도 오래간다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1~2억짜리 시설을 의뢰하면 당장은 좋겠지만 절대 그렇게 권하지 않고, 처음에는 매뉴얼 작업하고 그다음엔 반자동. 매출과 거래처가 늘어나면 그때 완전 자동 기계화를 하라고 조언해요"라고 말했다.

최종 목표에 대해 물으니 스탠다드화된 기계를 만들어서 해외에 수출하고 국내 고정업체를 늘리며 회사의 규모를 키우겠다는 답이 돌아온다. 이를 위해 비전랩은 연구개발을 계속 하는 한편 5월, 11월에 열리는 중국 대형 전시회에 참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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