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에게 듣는다]<16>밀란 라이치악 주한 슬로바키아 대사

“한국 기업에만 7가지 특전을 제공합니다.”

밀란 라이치악 주한 슬로바키아 대사(56)는 슬로바키아어로 된 정부 지원책을 뽑아 들었다. 지난 주 파볼 파블리스 경제부 장관이 방한해 한국 기업에 대한 혜택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뒤 곧바로 입안된 따끈따끈한 정책이다. 그는 “아직 번역도 되기 전이지만 기업들에게 하루빨리 알리고 싶다”며 차근차근 골자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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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 정부가 한국 기업에 제공하는 7가지 인센티브는 △100일 안에 모든 투자 절차 마무리 △기아자동차가 위치한 클러스터 지역에 대한 국고보조(State aid) 비율 35% 이상으로 확대 △정부 지원 패키지를 두 개 이상 받을 수 있도록 허용 △오는 2016년까지 슬로바키아 기아공장과 체코 현대자동차 공장간 물류 편의를 위한 직통 고속도로 건설 △전문가가 슬로바키아로 취업 이민·파견갈 때 비자절차 간소화 △경제부 내에 한국 기업 전담팀 신설 △연구개발(R&D)센터 설립시 자금지원 패키지 4종 제공 등이다. R&D 지원 관련 패키지에는 EU펀드, EU 과학기술 지원 프로젝트 ‘호라이즌(Horizon) 2020’, 금융지원, 세금 25% 인하가 들어가 있다.

특별히 한국기업에 우대 정책을 펴는 이유는 양국간 경제교류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슬로바키아에는 삼성전자와 기아자동차가 진출해 있다. 삼성전자는 유럽 지역에 공급하는 TV 등을 생산하고 기아자동차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해외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지난해 기아가 슬로바키아에서 생산한 차량은 31만대에 달한다. 삼성전자와 기아차를 합한 현지 고용 인원은 2만4000여명에 이른다.

슬로바키아는 지난 1989년(1993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분리되기 전) ‘벨벳혁명’을 거쳐 공산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전향했다. 경제 개방도 그 때 이뤄졌다. 이후 꾸준히 외국기업을 끌어들여 경제 성장을 꾀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720억유로(약 100조15억원)다. 구매력평가(PPP) 대비 GDP는 한국의 80% 수준이다.

지난 1991년부터는 주변 중유럽 국가 체코·폴란드·헝가리와 함께 ‘비셰그라드 4개국(V4)’ 협의체를 만들어 경제·문화를 포함한 일련의 협력을 하고 있다. 비셰그라드협의체 설립 후 처음으로 지난 7월 슬로바키아 수도 블라티슬라바에서 한-비셰그라드 외교장관 회의가 열렸다. 라이치악 대사는 “슬로바키아가 의장국을 맡으면서 한국과 V4 국가간 교류가 더욱 활성화 된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정보통신기술(ICT), 에너지, 식품, 서비스(은행·보험) 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어 향후 교역폭을 더욱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라이치악 대사는 한국 대표기업들이 슬로바키아를 유럽 전진 기지로 택한 이유에 대해 높은 노동생산성과 지리적인 위치, 금융 편의를 꼽았다. 그는 “슬로바키아는 고등교육 이수자가 전국민의 90% 이상”이라며 “높은 교육 수준을 갖고 있지만 인건비는 EU국가 중 가장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앙·동유럽에서 5년간 노동생산성 1위를 고수해 왔다.

지리적으로 중유럽이라 서유럽·동유럽으로 진출하기도 좋다. 비셰그라드 국가 중 유일하게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환전이 편리하고 환전 수수료를 이중으로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세계은행이 발표한 ‘비즈니스 활동2015’에 따르면 슬로바키아가 유럽 지역 내 비즈니스 환경 분야 1위를 차지했다”고 자랑했다.

덕분에 한국 업체뿐만 아니라 다국적 기업들이 슬로바키아로 몰렸다. 이 나라 산업은 자동차(31.5%), 제철 및 기계(20%), 전자제품(15%)으로 이뤄져 있다. 수출 비중은 자동차 25%, 전자제품 20%, 기계 11.5%로 자동차와 전자제품 의존도가 높다. 폴크스바겐, 기아자동차, PSA푸조 등이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포르쉐 카이엔, 아우디7, 폴크스바겐 투아렉 등 ‘럭셔리카’ 역시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 ICT기업도 대거 진출했다.

마이크로소프트·IBM·지멘스·레노버·델·HP·바스프·보쉬·콘티넨탈·파나소닉·에보닉·US스틸 등이 중유럽 본사를 슬로바키아에 뒀다. 라이치악 대사는 “10년 전만해도 아예 ICT산업이라는 게 없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현재는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 가량 된다”며 “특히 젊은층에서 스타트업 창업 열기고 높아지고 있어 ICT에 대한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치악 대사는 대학에서 정치과학을 전공했고 동아시아 전문가로 꼽힌다. 오랜 기간 중국 대사로 있었고 한국 부임 직전 아시아 태평양 총괄국장으로 재직하다 한국행을 지원했다. 그는 “부임 한지 두달 남짓 됐지만 전부터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며 “제3자가 객관적 입장에서 바라보기에 한국식 위계 문화, 아동·청소년이 사교육으로 내몰려 놀 시간이 없다는 게 창조산업 활성화에 걸림돌이 된다고 본다”며 한국 사회에 대한 제언도 내놨다.

밀란 라이치악 주한 슬로바키아 대사 약력

△1958년 출생

△1984년 러시아 모스코바 국립국제관계대학교 졸업

△1984~1985년 체코슬로바키아공산주의공화국 외교부 아시아본부 파견관

△1986~1989년 중국 베이징 대사관 파견관

△1990년 슬로바키아 의회 외교분과 담당관

△1991년 슬로바키아 의회 외교위원회 비서관

△1992년 중국 상하이 대사관 영사

△1993~1996년 중국 베이징 대사관 참사관

△1996~1997년 외교부 수석비서관

△1998년 영국 대사관 공사 참사관

△1999~2003년 인도네시아 겸 말레이시아·싱가포르·필리핀·오만·브루나이·동티모르 특임전권대사

△2003~2004년 대통령궁 외교정책부 국장

△2005~2012년 말레이시아 겸 오만·브루나이 특임전권대사

△2012년 11월 외교 및 유럽부 아시아·아프리카·태평양 국장

△2013년 6월 외교 및 유럽부 아시아·태평양 국장

△2014년 8월 주한 슬로바키아 대사 부임


오은지기자 onz@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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