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이미 오래된 운명
7
아틸라는 천천히 움직였다. 오늘따라 자꾸 헛기침을 했다. 에르낙이 눈치를 슬쩍 보았다.
“로마 입성을 미루시는 겁니까?”
아틸라는 대답이 없었다. 얼굴이 어두웠다.
“말라리아로 전사들을 많이 잃었습니다.”
아틸라는 에르낙의 걱정을 잘알고 있었다.
“로마는 이미 내 것이다. 지금 당장 치지 않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에르낙도 아틸라의 걱정을 잘알고 있었다.
“교황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진정한 로마의 수호자다. 멍청한 황제와 다르다.”
“로마는 지금 떠들썩합니다. 교황이 신의 징벌, 아틸라로부터 로마를 구했다고요.”
아틸라는 말을 멈추었다. 그는 진지했다. 어쩌면 당대 역사의 진짜 수호자였다.
“당장 구한건 맞다. 하지만 로마의 당장의 평화를 위해 그들이 지불한 대가는 어마어마한 것이다. 북이탈리아의 지배권을 완벽하게 넘겨받았다.”
아틸라는 다시 움직였다.
“일단 판노니아로 철수한다. 그곳에서 다시 로마를 치기 위해 공성전을 준비한다.”
에르낙이 서둘러 따라가며 말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틸라는 또 대답이 없었다. 쑥스러운 듯 했다. 에르낙이 슬쩍 웃었다.
“한 두 번도 아닌데 웬일이십니까?”
아틸라가 에르낙을 돌아보았다. 계면쩍은 표정이었다.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에르낙은 아틸라를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했다.
“모두...”
평소의 아틸라답지 않았다.
“힐다가 살아돌아온 것 같다고 한다.”
에르낙은 마음이 찌릿했다. 아틸라는 형 블레다에게 능욕당한 힐다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그녀의 치욕의 삶은 그가 끝내야 했다. 아틸라는 그 후 단 한 번도 힐다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가끔 힐다의 묘를 찾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호노리아 공주는 출산중이었다. 요란법석이었다. 그녀를 도와주는 시녀들이 있었지만 야단지랄이었다. 온갖 악을 쓰며 몸을 획획 뒤틀고 꼬고 생지랄이었다.
“아틸라를 불러다오. 아틸라를...”
그러나 시녀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짐짓 못들은 척 했다.
“아틸라를 불러 어서 불러.”
호노리아 공주는 시녀들을 발로 뻥뻥 차버렸다. 시녀 하나는 무심결에 뒤로 자빠지며 바닥에 머리가 깨지며 즉사해버렸다.
“아틸라를 불러, 내가 아틸라의 아들을 낳고 있다고. 내가 훈족의 다음 제왕을 낳고 있단 말이다.”
호노리아 공주는 계속 발로 뻥뻥 찼다. 시녀들이 나가 떨어졌다.
“빨리 아들을 받아라. 빨리.”
시녀들이 호노리아 공주 가까이 갔다. 가랑이를 한껏 벌리고 있는 호노리아 공주는 다리를 부르르 떨었다.
“아, 아, 아아아.”
호노리아 공주는 수치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었다.
“아틸라를 불러. 아틸라. 아틸라.”
순간 호노리아 공주는 조용해졌다. 모두 조용해졌다. 호노리아 공주가 물었다.
“아들이 죽었느냐? 죽었느냐?”
미사흔은 자객 에첼과 함께 사막에 도착했다. 에첼과 함께 건너던 사막이었다.
“명사산(鳴沙山)을 지나겠구나. 아침이면 산봉우리였다가 저녁이면 골짜기 되는 곳이라네. 조석으로 사막은 형태를 바꾸지. 바로 우리의 삶이지. 에첼.”
에첼은 헛것이 되어버린 자신의 정체를 보는 듯 했다.
“자네 나와 형제의 피를 나누세.”
자객 에첼은 놀라는 표정이었다.
“저는 왕자님을 살해하려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형제의 피를 나누시다니요, 이건 아닙니다.”
“난 신라로 돌아가지만 나에게 이미 형제가 없네. 난 맹세했었거든. 내 형제 눌지의 낯짝을 보지 않기로 말일세. 그러니 내 형제가 되어 우리 형제의 정을 나누세.”
“왕자님이 먼저 돌아가시면 제가 왕자님의 관을 지키겠습니다.”
“아니다. 우리는 같은 날 죽을 것이다.”
에첼은 멍한 얼굴로 미사흔을 보았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