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정보화의 대표격인 전자사원관리(ERP)가 국내에 보급된 지 20여년이 지났다. 기업들은 생존과 경쟁우위를 지키기 위해 ERP를 경쟁적으로 도입했지만 ERP 도입 이후 목표 성과 달성을 제각각이다. ERP는 ‘구축을 잘 했다. 못 했다’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중소기업 대표가 이 같은 내용을 담아 작성한 논문이 경제관련 국제 학술지인 ‘Behaviour & Information Technology’ 10월 3일자에 게재돼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하영목 비앤이파트너스 대표다.
하 대표는 ‘ERP 구축 이후의 성공요인’을 주제로 작성한 논문에서 ERP로 성과 내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가려냈다. 하 대표는 국내에서 ERP를 운영 중인 379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ERP 구축과 운영 관계를 분석해 성공요인을 도출해 냈다.
조사결과 최고경영자(CEO)의 지원이 ERP 전담 조직을 꾸리고 부서 간 협업과 의사소통을 이끌어 내는 등 ERP 활용과 정착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또 이 요인들은 운영 단계의 지속적인 프로세스 개선과 시스템 통합·확장으로 이어져 ERP 성과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실제 국내 주요 석유화학기업인 A사는 ERP를 도입 5년 만에 매출액이 13%가량 늘어났고 도입 9년차에는 14% 이상 증가했다. 영업이익 역시 도입 초기에는 다소 감소했지만 도입 6년차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도입 9년차에는 19%를 넘어섰다. 또 다른 기업 B사는 ERP 도입 전에는 매출액과 영업이익 증가율이 마이너스였지만 도입 이후 성장세로 전환했다. 도입 5년차에는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18%와 26%가량 늘어났다.
논문은 ERP를 잘 쓰는 기업그룹과 그렇지 않은 기업그룹으로 구분했다. ERP를 잘 쓰는 그룹은 전반적으로 구축 이후 결산 일정이 단축되고 보고 업무 효율이 향상됐다고 응답했다. 또 이 그룹에 속한 기업들은 프로세스 표준화를 통해 ERP를 업무처리와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기준으로 활용했다. 하영목 대표는 “ERP를 잘 쓰는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 보다 ERP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지속적인 프로세스 개선을 수행함으로써 자체 ERP 전담 조직이나 사용자들이 문제해결 능력을 보유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ERP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구축됐다 하더라도 ERP 전담조직을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사용자 지원 활동을 중단 없이 수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 대표는 개선 활동과 ERP 활용을 통해 목표 성과를 달성할 수 있도록 최고경영진이 ERP 시스템 활용에 관심을 갖고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하영목 비앤이파트너스 대표
“국내 기업 가운데 ERP를 제대로 쓰고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될까요. IT컨버전스 시대라고 외치고는 있지만 그것이 기업경영에 효과가 있는지는 다시 따져 볼 문제입니다. 이상적인 목표를 바라보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뭐 하나라도 진득하게 파헤쳐서 기본부터 차근차근 찾아 업무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영목 비앤이파트너스 대표가 논문 주제를 ‘ERP 구축 이후의 성공요인’이라는 주제로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ERP를 활용하는 고객사가 50곳이나 있지만 그 가운데는 자재소요량계획(MRP)도 못 돌리는 기업이 있습니다. 이런 기업에 SLM(Simulation Lifecycle Management)은 머나먼 이야기죠. 여기에 빅데이터나 클라우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하 대표는 “기간 시스템이 안 되는데 아무리 다른 응용시스템을 구축한다한들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성공적인 ERP 구축에만 관심이 있었지 지속적인 운영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RP는 구축만하면 저절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속적인 프로세스 개선과 관심이 없으면 무용지물임을 강조했다.
“ERP는 만능이 아닙니다. 구축하면 기업 실적이 저절로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ERP는 CEO가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문정기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