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주체는 기업이다. 애플이나 구글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지구촌 시장을 쥐락펴락하지만, 때로는 스웨덴에 위치한 이름없는 스타트업 기업 책상 위에서 세계 시장을 깜짝 놀라게할 내일의 작품이 꿈틀대기도 한다. 이에 전자신문은 전세계 주요 기업들의 어제와 오늘을 조망하고, 다가올 미래를 이들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를 심층 분석, 이 땅의 50만 법인에게 그 방향타를 제시하고자 한다.
‘가덴 산바가라즈(家電三羽)’
일본의 대표적 가전 3인방인 소니와 파나소닉, 샤프를 일컫는 이 단어가 일본발 외신에서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들 업체 가운데 파나소닉의 부활 조짐이 심상찮다. 특히 소니 등과 대비되는 파나소닉의 재기에 해외 언론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파나소닉이 과거 영광의 상징이던 플라즈마TV 등 백색가전 사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자동차와 태양광 패널, 기내 영상장비를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등 틈새 비즈니스에 투자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파나소닉의 지난 1분기(4~6월) 영업이익은 823억엔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642억엔보다 28.2% 증가했다. 시장의 전망치인 668억2000만엔을 크게 상회한 액수다. 매출도 1조8500억엔으로, 전년 동기 실적인 1조8200억엔에서 1.5% 증가했다.
이들 가전 3인방의 부침은 일본 TV산업의 업황 사이클과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회사의 모태인 TV사업부문을 자회사에 편입시켜 버리는 등 뼈를 깍는 구조조정 끝에 파나소닉은 이제 ‘매출 10조엔’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
2년전 쓰가 가즈히로 사장이 침몰 직전 파나소닉호의 선장 자리에 오를 당시 내건 슬로건이 바로 ‘반전 공세’였다. 이를 위해 쓰가 사장은 취임 후 가장 먼저 본사 조직을 단 150명으로 줄였다. 본인 스스로 솔선을 보이겠다는 의지의 표시였던 셈이다.
불투명한 의사 결정 과정의 결정판인 ‘플라즈마 패널공장 신설’과 ‘산요 인수’가 거함 파나소닉의 침몰을 자초했다고 판단한 쓰가 사장은 사내 최고회의인 ‘그룹전략회의’의 회의록을 그대로 공개했다. 또 일선 사업부장이 이 회의에 참여토록 하는 등 소통을 중시했다.
반면, 인사에는 추상같았다. 취임 후 2년만에 20명 이상의 임원을 퇴임시켰다. 대신 자신의 라인업으로 이른바 ‘팀 쓰가’를 꾸렸다. 그 면면을 보면 사내 영상·음향(AV) 전문 자회사였던 ‘AVC 네트웍스’ 출신 인사의 약진이 눈에 띈다. 그룹전략회의 멤버 11인중 쓰가 사장 포함, 총 5명이 AVC 출신이다.
자동차 부문 2조 엔, 주택 부문 2조 엔, B2B솔루션 부문 2조5000억엔 등 쓰가 사장은 오는 2018년도 매출 목표 달성의 가장 큰 핵심을 ‘B2B사업’의 성장에 맞추고 있다. 최근 단행한 조직 변경 역시 이같은 방향에 따라 이뤄졌다.
특히 이달부터 크게 바뀌는 것이 연구개발(R&D) 체계이다. 본사 R&D 본부에 속해있던 기초 연구인력 1000 여명을 반으로 줄여, 각 사업부로 전진 배치시켰다.
이들이 이동 배치된 해당 사업부의 연구 개발은 자동차 부문의 ‘자동운전 시스템’이나 ‘가정용 에너지관리 시스템’ 등 당장 2~3년내 파나소닉의 매출원이 돼 줄 테마들이다.
이익에 직결하는 개발에 중점을 두겠다는 포석이다. 이렇게 되면 사업부의 자주적인 독립 경영이 더욱 철저히 보장된다.
여기에 덧붙혀 4개 사업부를 횡단하는 소프트웨어(SW) 관련 개발 부서도 신설된다. SW는 지적 재산과 법률 문제에 관련이 깊다. 예컨대 각 사업부마다 개발 방법이 다르면, 같은 파나소닉 우산 아래 제품이면서도 형식이 상이한 사태도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SW개발 부서가 탄생하게 됐다. 파나소닉은 SW 만큼은 각 사업부에서 담당을 선출하고 전략을 정리토록 했다.
하지만, 파나소닉이 나아가야할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하다. 자동차 부문에 다양한 라인업을 갖췄지만, 내비게이션과 리튬·이온 배터리를 제외하면 대부분 2차 이하의 하청 일이다.
미국 테슬라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기가팩토리 건립용으로 수백억 엔을 선투자해야하는 상황에 몰려있다. 플라즈마 공장 설립에 투자한 2000억 엔을 불과 1년 반만에 날린 ‘트라우마’가 있는 파나소닉이다.
산요를 인수한지 4년이 됐지만, 9000명의 산요 출신 직원들은 여전히 파나소닉 출신보다 20% 낮은 급여를 받고 있다. 그 결과, 핵심 기술을 보유한 산요맨들이 합병 후 속속 삼성SDI 등 경쟁사로 빠져나가고 있다. 양사간 ‘화학적 결합’ 역시 매출 10조 엔의 재건 프로젝트에 앞서 파나소닉이 선결해야할 과제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