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보도한 한국HP의 구조조정 소식은 취재 내내 기자의 마음 한켠을 불편하게 했다. 장기화된 IT 경기침체와 소비침체로 기업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겠지만 구조조정 이후 뒤따를 고통은 짐작이 어렵지 않아서다.
한국HP는 올해로 창립 30주년이 됐다. 단순한 해외 기업의 현지 법인이 아니라 국내 IT 산업과 뗄 수 없는 기업이다. 지난 1984년 삼성전자 합작으로 출발, 국내 프린터와 PC 등을 공급하고 기업 운영에 필요한 시스템과 인프라를 제공해왔다. 국내 정보화에 일조했을 뿐만 아니라 이 회사는 국내 전자 산업에 ‘큰 손’ 역할을 했다. 자사 제품 제조에 필요한 메모리·LCD·배터리 등 부품들을 우리나라에서 구매한 규모가 연간 수조원에 달한다. 한국HP의 구조조정 소식은 국내 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더욱 씁쓸하게 만든 건 구조조정에 익숙한 듯한 임직원들의 반응이었다. “시장 상황이 워낙 나쁘지 않냐”거나 “요새 (구조조정을) 안 하는 곳이 없다”는 얘기들은 취재 자체를 미안하게 만들었다.
구조조정 소식은 특정 산업이나 분야에 상관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구조조정이 자연스럽고 당연시 하는 분위기다.
기업들은 경영 정상화와 재무상태 개선 등을 이유로 구조조정을 얘기한다. 하지만 문제는 고통분담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여부다. 실적 악화를 들어 감원을 단행하면서, 배당금은 늘리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 외국계 IT 기업은 지난해 200여명을 감원했지만 배당금, 특허권 명목으로 순이익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을 본사로 보냈다.
위기극복은 말로 될 수 없다. 또 어느 한 쪽의 희생만으로 달성할 수 없다. 고통분담의 형평성을 잃은 구조조정은 남은 구성원을 불안케 하고 악순환에 빠뜨릴 수 있다. 최근 한 취업 사이트의 조사 결과, 직장인 10명중 3명은 현재 근무하는 회사가 올해 구조조정을 할 거 같다며 높은 고용불안감을 표시한 바 있다. 구성원이 흔들리는 회사는 경쟁력도, 영속성도 담보할 수 없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