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세상의 절반을 달라
5.
둥둥 소리뿐이었다. 보이는 세상은 오직 검은 구름이 가득한 하늘과 땅 뿐이었다. 하늘이 둥둥 내려앉고 있었다. 땅도 둥둥 흔들흔들 했다. 히히히히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악마의 죽음을 재촉하는 소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도시의 사람들은 서로 꼭 붙어서 하늘도 땅도 구분 없는 저 먼 어딘가를 뚜렷이 응시하고 있었다. 저 먼 어딘가 그들을 남김없이 잡아먹을 징벌이 있었다. 히히히히 괴이한 소리가 이미 패배에 직면한 사람들의 귓속을 뚫고 심장을 찾아와 갈기 찢고 있었다.
남자들은 집에 뒹구는 농기구를 챙겼지만 결연한 눈빛 속에 미처 감추지 못한 굴복과 항복의 자세는 무용지물의 그깟 항거였다. 평생을 전장에서 피를 쏟았던 군인들도 이런 적은 만나본 적이 없었다. 적은 자신의 정체를 보이기 전에 피정복자들에게 필사(必死)의 전사통지서를 보내는 중이었다.
“고트족이야.”
“아니야. 그들일 리가 없어. 아타울프스가 죽은 후 어느덧 사라져가는 족속이야.”
한 아이가 급작스레 소리쳤다.
“아틸라 더 훈.”
순간 그들이 공간은 극단의 정숙함이 소름처럼 쳐들어왔다.
“아틸라...”
화살비가 쏟아졌다. 아뿔사, 그 먼 곳에서 달려온 검은 구름은 화살비였다. 그와 동시에 말발굽소리가 둥둥 도착했다. 아틸라 더 훈은 늘 무서웠다. 대면하기 전부터 무서웠다. 드디어 보았다. 등자(鐙子)를 밟고 말 위에 선 채로 화살을 쏘며 전속력으로 벅차게 밀려오는 훈의 전사들을, 아틸라를 보았다. 도시의 사람들과 군인들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피피피픽 전혀 낯선 비명의 흔의 전사들이, 작고 째진 눈에 묘한 고양이 눈빛을 가진 아틸라가 메츠(Mets)의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의 머리통을 단번에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었다.
“악! 아틸라...”
한 남자의 머리통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뇌가 공처럼 튀어나왔다. 아틸라는 그 뇌마저 쩌억 갈라버렸다. 피피픽 뇌가 튀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죽여라.”
두 번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는 신의 징벌이었다.
피피픽 화살은 금성(金城)을 공격한 이서국(伊西古國) 병사들의 머리통에 박혔다. 신라의 병사들은 자신들이 쏘지 않은 화살에 죽어나가는 이서국 병사들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순간 시커먼 댓잎 구름이 하늘에서 회오리로 내려앉았다. 댓잎귀걸이를 한 무사들이 단단한 갑옷을 입고 날개 달린 준마를 탄 채 무시로 내려앉았다. 사십 여명은 족히 되어보이는 무사들은 그리도 사뿐했다.
“이서국 병사들을 모두 죽여라.”
이서국 병사들은 뒷걸음치며 주춤거렸다. 전에 본 적 없는 적의 정체에 들고있던 무기를 내려놓았다. 댓잎귀걸이 병사들은 이서국 병사들을 한 놈도 살려둘 요량이 없었다. 사십 여명의 댓잎귀걸이 무사들은 휘이익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서국 병사들은 댓잎처럼 후두둑 나가떨어졌다. 댓잎귀걸이 무사들은 다시 하늘로 올랐다. 검은 댓잎 구름이 따라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하늘은 그토록 말끔했다. 하지만 땅에는 댓잎들이 후두둑 천지에 가득했다. 신라병사들은 짐작도 못한 전설의 느닷없는 무사들을 만난 경험에 모두 무릎을 꿇고 울었다.
“미추왕의 징벌이다.”
눌지는 소리치며 후두둑 잠에서 깨어났다. 침상은 징벌의 흔적이 푹 젖어있었다.
“신라 김씨 왕족을 보호하는 세력이로다.”
그때 아영부인이 예의를 버리고 눌지의 침소로 쳐들어왔다. 그녀의 낯빛은 자식을 잃어버린 여자의 그것이었다.
미사흔도 억지 꿈에서 벌떡 깨었다.
“댓잎귀걸이 무사들이라니...이는 미추왕이 김씨 왕족인 나, 미사흔을 보호하고 있다는 계시구나.”
미사흔은 이 꿈의 내막을 깊이 알고 싶었다.
그때 나머지 오형제가 불쑥 나타났다. 오형제는 징벌의 증거를 끌고 왔다. 오형제들 낯빛은 어지러운 세상에 호통을 칠 만한 그것이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