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대토론회]미래 에너지, IT에 달렸다

에너지 시장 대변화가 예고됐다. 4일 한국전력 대강당에서 열린 ‘에너지 신산업 대토론회’는 자원부족과 전력위기 등 국가 에너지 난제를 해결할 구원투수인 신산업 활성화를 위한 혁신을 논하는 자리였다. 그동안 에너지 신산업 활성화 발목을 잡던 제도적 걸림돌을 제거하고 초기시장 형성을 위한 다양한 계획이 발표됐다. 박근혜 대통령도 토론회에 동참해 ICT를 활용한 에너지 기술이 에너지 수급을 해결하고 새로운 시장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와 산업계 학계는 그 어느 때보다 에너지 시장 개편의 필요성에 강한 공감대를 형성했고 전에 찾아볼 수 없던 강력한 제도 혁신의 의지를 보였다.

“규제와 정부·공기업 중심의 시장제도 운영에 변화가 필요하다.” 4일 에너지신산업 대토론회를 관통한 핵심 코드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그동안 에너지 산업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강력한 규제와 느린 변화라는 고정 관념을 탈피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에너지 시장의 고질병이 이번 토론회처럼 공개석상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은 없었다.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 이후 10년 넘게 산업계와 학계에서 단발적으로 제기되어 온 국가 에너지 산업의 문제가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 제기됐다.

전기요금 현실화는 이번 토론회에서도 도마에 올랐다. 에너지 신산업이 편리한 에너지 절약과 경제적 이익,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이어질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전기 요금이 신시장 창출의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규제와 공기업 중심으로 움직이는 시장도 빠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초기 시장 창출에 장애요인으로 평가됐다.

유망 신산업으로는 신재생에너지와 ICT 융합형 모델이 제기됐다. 리처드 뮬러 버클리대 교수는 자원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의 여건을 언급하며 ICT를 활용한 에너지 절약과, 풍력·원자력 발전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특히 에너지 절약은 가장 청정하고 값싼 에너지로 한국의 ICT 역량을 활용하면 큰 기회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관련 사례로 김대훈 LG CNS 대표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활용한 에너지 서비스 산업을 소개했다. 김 대표는 ESS가 단순 제조업을 떠나 ICT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 적용이 가능한 융복합 서비스라고 강조하고 관련 시장이 커지기 위해서는 경제성 보완을 위한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낮은 전기요금 등 에너지가격 불균형 해소는 신산업 활성화 생태계 조성을 위한 선결 조건으로 제기됐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송전설비 투자비, 기후변화 대응, 전원설비에 따른 사회적 갈등 비용 등도 전기요금에 반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용도별 가격보조와 주택용 누진제 등 복잡한 요금제도 개선과 신산업 경제성 제고를 위한 맞춤형 요금제 도입을 건의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송변전 시설에 대한 국민 수용성은 계속 낮아지면서 공급능력은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에너지의 전기화는 가속화되면서 전기요금 인상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고 진단하며 신산업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 IT기반 수요관리, 분산전원 활성화를 핵심 정책과제로 삼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기술과 시장을 연결하는 혁신 인프라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신재생과 ICT 융합, 에너지가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규제철폐와 제도적 지원마련에 의견이 모아졌다. 리처드 하디 BRE 글로벌 회장은 2016년부터 추진하는 영국의 ‘제로카본홈’ 의무화를 언급하며 사전 단계로 법과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시장변화를 모니터링하면서 실효적인 솔루션을 지속개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디 회장은 이 자리에서 한국과 에너지산업 빅데이터 활용 부문에 공동 기술개발을 제안하기도 했다. 미카엘 에카르트 시티그룹 상무이사는 신산업 투자재원 조달방안에 대해 조언했다. 특히 정부와 금융기관의 적절한 리스크 분담과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에너지 신산업 해외진출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촉구했다. 변화와 충격 없이는 에너지신산업 활성화 시도가 효과를 보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김승모 한화큐셀 국내총괄상무는 신재생 산업의 현지 전략과 기업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해외진출을 위한 실증사업 확대와 정상회담을 통한 지원을 건의했다.

박상진 삼성SDI 대표는 실적확보 차원에서 풍력발전과 ESS 결합모델에 인센티브 도입을 제안했다. 정태용 KDI 교수는 국제기구를 활용한 해외진출을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했다. 정 교수는 국제기구가 진행하는 신재생 보급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사업 공고 전 타당성 검토 단계부터 참여해야 한다며 중소기업에 대한 공적개발원조 지원을 확대하고 수출보험의 신산업 특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상직 장관은 이날 자리에서 에너지 규제를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금지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도입 전기와 비전기에너지의 상대가격 조정, 신산업 관련 제도 마련 등 강도 높은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유로운 시장 참여를 제한하는 낡은 제도와 규정을 개선하고 정책적 불확실성도 걷어내 에너지신산업의 수출산업화에 힘써야 한다며 정부의 과감한 혁신 의지를 주문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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