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SW) 개발이 온라인 게임보다 더 재미있다.” 조현정 SW산업협회장이 청소년 게임 중독의 심각성을 얘기하다 꺼낸 말이다. 웬 궤변인가 싶었다. 잦은 밤샘 근무에도 불구하고 박봉에 시달리기 일쑤인 ‘SW 개발’이 게임보다 즐겁다니. 그는 한번 ‘개발 맛’에 빠져들면 헤어나기 어렵다는 경험담을 전하며 청소년들이 그 맛을 알게 되면 게임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은퇴하면 SW 개발자로 활동하겠다.” 미래부에서 SW정책을 총괄하는 서석진 정책관의 인생 이모작 계획이다. 어리둥절했다. 고위 공무원이 은퇴 설계 분야로 SW 개발자를 꿈꾼다는 것이. 이유를 묻자 ‘즐겁기 때문’이란다.
SW 업계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전문가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개발자를 천직으로 생각한다. 시장 상황이 어렵고 사회적으로 홀대를 받는다는 하소연은 많지만 개발이 지겹다거나 못해먹을 짓이라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한결같이 그 이유를 ‘재미’로 꼽는다. 중독성마저 있어 개발에 빠져들어 밥 먹는 것도 잊은 적이 있다는 전문가들이 수두룩하다.
최근 초·중·고교생 SW 조기교육을 놓고 논쟁이 뜨겁다. 자녀들에게 공부 부담을 덜어주지는 못하고 더 가중시킨다는 학부모들의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또 우리 교육 환경에서는 단순 코딩 기능공만 늘릴 뿐이고 오히려 SW에 대한 인식만 나빠질 것이라는 일부 학계의 우려도 높다. 대학입시과목에 포함될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미국 실리콘밸리 출신들이 강남에 SW 입시 학원을 차려 한몫 챙길 거라는 황당한 ‘괴담’마저 나돈다.
그럼에도 SW 조기 교육의 필요성에는 대부분 공감한다. 단지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자칫 입시를 위한 ‘점수 따기’ 과목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시각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SW적 사고를 심어줘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창의적 인재로 키우겠다는 기본 취지에도 긍정적이다.
의욕이 과했던 탓일까. SW를 정규 교육 과정에 넣겠다는 관계 당국의 의지가 과도하게 부각되면서 오히려 논쟁을 키웠다. 2018학년도 교과목에 넣기 위해 시간에 맞춰 쫓기듯 추진했기 때문이다. 사전 준비가 미흡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논의를 다시 시작하라는 의미다. 해법은 간단하다. SW 교육을 공부가 아닌 놀이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면 된다. 코딩하는 법은 시험 보는 넌더리나는 입시 과목이 아닌 흥미 유발제가 돼야 한다. SW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재미’를 맛보는 순간 SW 교육은 즐거운 놀이터가 될 것이다. 대학입시 SW 과목은 SW가 재미있어 선택한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정해 치르면 된다. 논란거리가 될 이유도 없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초·중·고 교육을 강화해 인력이 부족한 SW업계에 공급하겠다는 식의 단편적인 접근법은 경계해야 한다. 또 조기교육을 일단 시작해보고 제대로 안되면 그때 고치자는 망언도 삼가야 한다. 어설픈 교육정책이 불러온 참담한 결과는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이제 게임에 버금가는 흥미로운 SW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어내고 앞서 재미를 경험한 바를 아이들에게 전수할 수 있는 전문 교육자를 양성하는 게 정부의 숙제다. 의미 있는 SW 조기 교육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서부터다.
서동규 SW산업부장 dk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