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세계 처음 전자칠판 디스플레이 국제표준화를 추진한다. 내수 시장에 치우친 전자칠판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목적이지만 영세 기업에 또 다른 규제 장벽이 될 수 있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국가기술표준원은 최근 전자칠판 국제표준(안)을 만들기 위해 ‘전자칠판 표준화 연구’ 과제를 공고했다. 연말까지 국제표준(안)을 도출한 후 내년 본격적인 국제표준화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국표원은 “전자칠판이 스마트러닝시스템 기자재로 학교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며 “사용자 시력보호와 품질향상을 위한 표준화가 시급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전자칠판 디스플레이의 해상도와 밝기 등에 관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국내 전자칠판 시장에는 한국전자칠판협회가 지난해 1월 수립한 ‘인터랙티브 화이트보드’ 단체표준이 있지만 여기에 해상도와 밝기 등에 관한 구체적 기준은 없다.
국표원은 단체표준이 있는 만큼 이를 무리하게 국가표준(KS)으로 전환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다만 세계 전자칠판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단체표준을 유지하면서 국제표준(안)을 새로 만들기로 했다. 국표원 관계자는 “우리나라 주도로 국제표준을 수립하면 향후 시장을 공략하는 데 유리한 점이 많을 것”으로 기대했다.
업계 반응은 엇갈렸다. 단체표준 규격을 상회하는 국제표준이 만들어지면 결국 기존 단체표준은 유명무실해지고 과잉 규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미 안정성이 입증된 삼성·LG 등의 TV세트나 디스플레이 패널이 그대로 전자칠판에 탑재되는 상황인데 이를 전자칠판에서 또다시 규제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업계는 국제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제품은 자칫 사용자 시력을 저해하는 유해한 것으로 오인될 가능성도 있다고 반박했다. 한국전자칠판협회 관계자는 “이미 대부분 전자칠판이 별도의 보안경을 설치하는 등 시력보호 장치를 두고 있다”며 “새로운 국제표준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중소기업인 전자칠판업계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달리 국제표준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사용자가 안심하고 쓸 수 있는 전자칠판 기준이 필요하다”며 “전자칠판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불량제품 문제도 많아져 사용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전자칠판 시장 규모는 연 400억원가량이지만 간판만 내건 업체까지 포함하면 50~60개사가 난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표원은 이러한 분위기를 감안해 조심스럽게 접근할 방침이다. 국표원은 전자칠판 제조업계와 학계, 사용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로 구성된 ‘전자칠판 표준화전문위원회’를 중심으로 업계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국표원 관계자는 “이제 연구를 시작하는 단계”라며 “앞으로 충분한 연구와 검토를 거쳐 국제표준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