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로마의 문(門)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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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흔의 시선은 벌써 머언 지평선을 달리고 있었다. 그곳에 아틸라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말과 한 몸이 되어 명사산(鳴沙山) 정상보다 더 우뚝 서있는 그는 우주수목(宇宙樹木)이었다. 그가 얼른 그리웠다.
“서로 다른 배에서 나온 자손이라고 하지만 형제간에 칼을 겨누어야 하는 심정은 아프구나.”
미사흔은 온화했지만 잔인하진 못했다.
“신라에서는 미사흔 왕자님은 이미 역적입니다. 아영부인과 가족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아무도 그 흔적을 알 수 없습니다.”
미사흔의 눈빛은 이제 더 멀리 가있었다. 아틸라가 달려가고 있었다. 자신을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아틸라는 점점 멀어져갔다.
“그들은 내가 안다. 왜(倭)로 갔다. 교토에 있을 것이다. 내가 볼모로 잡혀있을 때 나와 인연을 가진 친구가 그곳에 있다. 염려말라. 내 나중에 반드시 찾는다.”
순간 에첼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녀의 회색빛 호박색빛 눈동자가 미사흔을 경멸하며 사납게 짙어졌다. 어찌보면 사랑의 깃발이었다.
“커다란 제국을 이루실 분이 그깟 가족의 인연에 연연하시다니요. 저희가 왕자님을 계속 따라도 되겠습니까?”
미사흔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딴소리를 했다.
“따돌릴 수 있겠느냐?”
“저희 오형제가 맡겠습니다.”
앳된 얼굴에 갓 올라온 솜털이 보슬보슬한 불과 십대 중반의 선도의 아이들은 어느새 무사가 되어 사라지고 없었다. 그제서야 미사흔이 에첼을 깊이 바라보았다. 에첼은 시선을 딴 데 두었다. 미사흔은 에첼을 품에 안으려 했다. 그러나 에첼은 매몰차게 몸을 돌렸다.
“신라에서 보낸 자객들이 우리의 목을 따려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도 여인의 속살을 찾으시다니요? 아틸라 왕자님같으면 어림도 없습니다.”
에첼은 의도적으로 미사흔을 약올렸다. 곧바로 미사흔은 안색을 찌푸렸다.
“난 아틸라가 아니다.”
“내 미사흔 왕자님이시죠.”
에첼은 콧소리로 비아냥거렸다.
“나의 아들을 낳겠다고 하지 않았더나?”
미사흔은 범부가 되지않으려고 꽤나 노력했다.
“아들이요? 낳아야죠. 하지만,”
갑자기 에첼은 미사흔을 비웃듯 노려보았다.
“위대한 제국을 건설하지 못할 범부의 아이를 가질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미사흔은 에첼의 팔을 억세게 잡아당겼다. 에첼이 사나이의 본성을 깨웠다. 에첼은 금새 쏘옥 빠져나왔다.
“아틸라 왕자님은 이러지 않으셨습니다. 겁탈이라도 하실 작정이십니까?”
미사흔은 버럭했다. 이제야 참말 범부가 되었다.
“네가 아틸라와 정녕 무슨 관계인가?”
에첼은 그 묘한 눈동자를 말똥거리기만 할 뿐, 정말 당당하고 당돌했다.
“자, 잡아보시지요.”
에첼은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한꺼풀 한꺼풀 벗겨져 나갈 때마다 미사흔은 온몸이 불덩이가 되어갔다. 미사흔이 에첼을 잡으려 하면 에첼은 이미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고 없었다. 미사흔은 범부가 된 것이 아니라 점점 짐승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까스로 미사흔이 에첼을 와락 잡았다. 미사흔은 에첼의 벗은 가슴을 똑바로 보고있었다. 미사흔이 그녀의 나머지 옷을 우악스럽게 벗겼다. 에첼은 완전히 발가벗겨져 있었다. 미사흔은 여인의 알몸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은밀한 방이 아닌, 사막이었다. 미사흔은 스스로 한낱 짐승이 되고싶었다.
순간 짧은 단도 십 여개가 그들의 옆을 가까스로 스쳤다. 미사흔의 귀에서 피가 흘렀다.
“앗!”
쉿쉿 소리는 공기가 엎치락뒷치락 하는 소리였다. 흑단의 긴 머리칼을 흩날리며 마답비연의 풍경으로 날아오르는 한혈마가 아틸라 앞에 도착했다. 한혈마는 겸손했다. 아틸라에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아틸라는 단숨에 한혈마에 뛰어올랐다.
“에르낙, 넌 이곳을 통제하라,”
그가 말 위에 오르자 사람인지 말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어느새 아틸라는 사라지고 없었다. 말발굽소리는 당연히 없었다.
콘스탄티우스, 오에스테스, 에데코는 부리나케 자신의 말에 올라 아틸라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느닷없는 자손의 새로운 역사를 위해 달리는 위험한 족속, 신의 징벌이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