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폰 업계가 보조금 딜레마에 빠졌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시행되고 이동통신 자회사가 시장에 진출하면서 ‘보조금 청정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오히려 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통법에 따라 통신사가 투명한 보조금을 지급하면 보조금을 거의 주지 않고 싼 요금제로만 승부를 걸었던 알뜰폰 소비가 줄어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23일 알뜰폰 업계에 따르면 에넥스텔레콤, KCT, 에버그린 모바일 등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이 단통법 시행 이후 마케팅 방안에 고심 중이다.
한 업체 임원은 “단통법 시행으로 단말 경쟁력이 아닌 요금·서비스 경쟁력으로 이통 시장이 재편 되는 것은 환영한다”면서도 “이동통신사 보조금 공시로 인해 그동안 보조금이 없이 사업을 영위해 온 알뜰폰이 혜택이 없다는 인식이 퍼질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보조금 청정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오히려 사업에 부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아직까지 미풍에 그치고 있지만 최근 시장에 진출한 통신사 자회사들이 유심요금제 이용자들을 끌어갈 수 있다는 불안감도 확산됐다.
중소 알뜰폰 시장을 중심으로 커 온 유심요금제(자급제 단말기나 구형 단말기를 이용하는 고객이 유심만 교체하는 것) 고객이 이통 자회사의 마케팅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단통법에 따르면 개통된지 24개월 이상 지난 단말기나 약정 조건이 해결된 단말기는 다시 보조금이나 이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을 받을 수 있다.
이제 막 알뜰폰 시장에 진입한 이통 자회사들이 유심요금제 이용자를 대상으로 보조금이나 요금할인을 지원할 경우 자금력이 약한 중소 사업자는 타격을 받을 수 있다.
ktis(KT)와 미디어로그(LG유플러스) 등 알뜰폰 시장에 신규 진입한 업체들이 한정된 점유율 약 33%(이통 자회사 전체 시장 점유율 제한 50%)를 놓고 단기간에 경쟁을 벌인다면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걱정이다.
중소 알뜰폰업체 사장은 “MNO 시장의 비정상적인 과열 경쟁이 알뜰폰 업체로 번지면 가입자 유치를 위해 구형 단말기 소지자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이 벌어질 수도 있다”며 “정부가 알뜰폰 시장에서 시장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큰 틀에서 단통법과 이통 자회사 진출을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단통법 취지는 기본적으로 MNO 시장은 투명한 보조금, MVNO는 보조금이 없는 대신 싼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장을 만들자는 것”이라며 “이통 자회사 알뜰폰 업체가 막대한 손해를 감당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것은 비정상적 상황으로 쉽게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알뜰폰의 핵심 역할이 싸고 질 좋은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중소 사업자들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