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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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상한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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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큰한 새벽 안개가 동강난 트라키아인들의 시체 위로 내려앉을 무렵, 아틸라는 이미 깨어나 명상에 잠겨있었다. 안개의 냄새는 이상하게 달디 단 명약의 기운이 있었다. 전사만이 마실 수 있는 기운이었다.

“우리는 대(大)중원을 거쳐 눈물의 연지산(燕支山)을 떠났으니 서쪽으로 서쪽으로 카스피해, 볼가강에서 다뉴브강을 지나며 슬라브족, 알란족, 스키리족, 게피타이족, 고트족, 트라키아족 등을 모두 제압할 것이다. 아틸라, 너는 그곳에서 멈추면 안된다. 게르만족을 떨쳐버리고 대(大) 로마제국을 페허로 만들라. 그리고 또 멈추면 안된다. 그곳에서 다시 동쪽으로 동쪽으로 너는 드디어 실라에 도착 할 것이다. 그곳이 바로 우리 부족을 데려갈 약속의 땅이다. 세상의 모든 땅을 정복하며 우리 훈족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갈 대제국의 제왕은 아틸라, 바로 너다. 네가 황금검의 주인이다.”

갓난아기의 잠보다 깊고 늙은이의 꿈보다 먼 명상에 잠겨있던 아틸라의 주먹이 불끈했다. 순간 트라키아인들의 피를 머금은 막사가 쩍쩍 갈라졌다. 살점을 찍어내는 무시한 채찍질 소리가 막사를 난도질하고 있었다. 아틸라는 적의 살기를 감지한 전사의 이악문 몸짓으로 뛰쳐나갔다.

이미 많은 훈의 전사들이 불안이 팽배한, 곧 터질듯한 고름의 몰골로 모여있었다. 아틸라의 심복들인 콘스탄티우스, 오에스테스, 에데코는 각자의 무기에 손을 얹고 있었다. 여차하면 그들은 곧 살인기가 될 것이다. 땅은 방금 쥐어짠 피가 너무 맑았다. 설익은 피 냄새가 고문의 들판에 한기를 몰고왔다. 블레다가 아틸라의 비기인 도기(아들이라는 의미)를 나무틀에 묶어놓고 혹독하게 채찍질하고 있었다.

“황금검이 어디 있느냐? 말하라.”

블레다는 짐승의 채찍으로 도기의 얼굴을 뭉개고 있었다. 블레다는 의기양양하게 아틸라를 보며 건들거렸다. 아틸라는 한 마리 말이 되어 박차고 날랐다. 그의 긴 머리칼이 블레다의 머리통을 쳐박았고 그의 손은 블레다의 무소불위의 채찍을 한 힘으로 휘어잡았다. 어느새 블레다의 손목은 채찍으로 결박당해 있었다.

“아틸라, 이게 무슨 짓이냐?”

블레다는 핑핑 오른 낯짝살로 함몰되어 흔적만 겨우 남은 독사의 눈빛으로 아틸라를 노려보았다. 미련한 살기가 뱀독에 부푼 혈관처럼 불안하게 불뚝거렸다.

“네가 황금검을 감추었구나. 어서 내놓아라.”

그의 눈깔은 핏줄이 널을 뛰며 미친년 푸닥거리처럼 푸드득 푸드득 터졌다.

푸드득 암살자가 던진 비수같은 서늘한 우박이 지붕을 세차게 때리고 있었다. 그 소리는 미사흔과 에첼의 가슴을 베일 듯 흔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 윗옷을 벗은 채 마주앉아 있었다.

“저는 미사흔 왕자님과 함께 떠나지만 반드시 실라로 돌아올 것입니다. 왕자님의 아이들과 함께.”

미사흔이 에첼을 천천히 끌어당겨 안았다.

“이 황금검은 반드시 아틸라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에첼은 조곤조곤 멈추지 않았고 미사흔은 에첼의 바지 허리춤을 풀었다. 유목민족들이 입는 여자들의 바지였지만 그래도 비단이었다.

“이 검은 자신의 주인에게서 떠나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인에게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미사흔 왕자님과 함께요.”

미사흔은 에첼의 구결(句決, 모자)을 풀었다. 길고 긴 검은 말갈기의 머리채가 미사흔의 가슴속으로 털썩 내려앉았다.

“우리는 황금의 제국을 건설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끝이 바로 실라입니다.”

미사흔은 에첼을 애틋하게 눕혔다.

“그렇게 황금의 제국은 완성됩니다.”

두 사람이 드러눕는 순간, 빠른 암기가 휘이이 침실을 달렸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