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삼성전자가 보광그룹 핵심 계열사인 STS반도체통신에 일감 몰아주기 움직임이 포착돼 주목됐다. STS반도체통신은 지난 2010년 PC용 D램 패키징 사업을 수주한 데 이어 근래 고부가 제품인 DDR4 D램의 패키징 사업까지도 수주했다. 보광그룹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 가족이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직계 외가다. 일각에선 본격적인 보광그룹 ‘일감 챙겨주기’가 시작된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전문 업체 STS반도체통신(대표 홍석규·전병한, 이하 STS반도체)은 다음 달부터 필리핀 법인(PSPC)에서 삼성전자에 납품할 PC용 DDR4 D램 패키징을 담당한다. 초기 월 1000만개 공급을 시작으로 향후 4500만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까지 자사 쑤저우 라인에서 PC용 DDR4 D램 패키징 상당 부분을 처리하고, 나머지 물량을 외부 협력사에서 조달한 삼성전자는 올해 들어 외부 협력사 주문을 중단했다. 대신 쑤저우 패키징 라인 일부를 STS반도체에 임대 방식으로 이전하고, PC용 DDR4 D램 패키징 상당 물량을 STS반도체에서 조달하기로 했다. 협력사는 일감이 끊긴 반면에 STS반도체는 고부가 D램 패키징 공급권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업계 핵심 관계자는 “8월 말 양산을 목표로 삼성전자 중국 쑤저우 패키징 라인에 있는 플립칩 생산 설비를 PSPC로 이전하고 있다”며 “STS반도체는 이들 설비와 연계해 활용할 모듈 제작설비에만 투자하면 되므로 투자부담을 덜게 됐다”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친척관계에 있는 STS반도체에 특혜를 부여한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았다. 업계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STS반도체와 특수관계라 하더라도 통상 삼성전자는 가격 경쟁을 붙여 물량을 배분하는 게 일반적이었다”면서 “이번에는 고가의 설비를 임대해주면서까지 STS반도체에 일감을 몰아준 격”이라고 말했다. 이어 “메모리용 플립칩 라인을 갖춘 다른 국내외 업체들에는 이 정도 수량의 공급제안 자체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실적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STS반도체에 고부가 일감을 맡긴 것은 최근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가 빨라지는 분위기에서 일어나는 변화 아니겠느냐”고 언급했다.
STS반도체는 지난 2012년 매출액 5984억원, 영업이익 218억원을 낸 뒤 지난해에는 매출액 5408억원, 영업손실 132억원으로 뒷걸음질쳤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은 236.08%에서 350.69%로 늘었고, 올 1분기에는 부채비율이 385.35%로 다시 증가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STS반도체가 높은 부채비율에도 불구하고 최근 비메모리용 플립칩 라인 구축, 테스트 라인 도입 등 신규 투자를 계속해왔다”며 “패키징 업체의 설비 투자는 고객사 확답이 있어야 가능한 통념상 사전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업계는 STS반도체가 삼성전자의 PC용 D램 물량 절반가량을 도맡게 된 과정도 석연치 않다는 시각이다. 삼성전자가 PC용 D램 패키징을 여타 협력사들에 제안했을 때의 조건과 실제 STS반도체가 일감을 맡은 조건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다수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삼성전자는 물량 공급권 부여 조건으로 협력사가 자체 부담으로 설비를 포함해 생산능력을 대폭 키울 것을 주문했다. 이에 비해 전체 생산라인의 70%가량을 삼성전자에서 임차한 설비로 채운 STS반도체는 상대적으로 지나친 특혜를 받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STS반도체와 맺은 세부적인 계약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보광그룹 하이테크 계열사 중 삼성 의존도가 높은 휘닉스소재(대표 최인호)와 비케이이앤티(대표 이지형·BKE&T)의 최근 행보도 주목된다. 휘닉스소재는 전체 매출 중 삼성 비중이 절반에 달하고, 비케이이앤티는 주력인 터치스크린패널(TSP) 제조와 발광다이오드(LED) 모듈 전량을 삼성에 납품하고 있다.
김주연기자 pill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