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월드컵 개막으로 일본 TV 제조사들의 브라질 공략 마케팅이 눈에 띄게 늘어난 가운데 브라질 TV 시장에서 국내 제조사들의 선전이 새삼 주목된다. 일본과의 오랜 우호관계를 배경으로 일본식 방송 전송규격을 채택한 브라질에서도 한국 TV 독주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 평판 TV가 브라질에서 독주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합친 점유율이 60% 이상이다. 브라운관 TV 시절에는 소니, 샤프, 도시바 등 일본 업체와 필립스가 시장을 독차지했으나, 2000년대 후반 PDP·LCD 등 평판 TV가 등장하면서 국내 업체들이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브라질 시장은 당초 일본의 독무대로 예상됐던 곳이다. 2007년 12월 일본식 지상파 디지털 방송 전송규격 ISDB-T를 기반으로 개발된 SBTVD를 채택해 일본을 제외한 범 ISDB 국가 중 최대 규모이기 때문이다. 이후 남미 대부분의 지역이 SBTVD에 동참하며, 일본의 남미공략이 가시권에 드는 듯했다. 브라질은 ISDB-T 기반의 일본식 이동방송 규격 원세그도 2008년 상용화한 바 있다.
더욱이 100여년의 브라질과 일본 간 우호관계도 일본 업체들에게는 좋은 조건이다. 1908년 일본인들의 첫 브라질 이주를 시작으로 150만여명의 일본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 상당수는 국회의원, 의사 등 각계 고위직에 분포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인기 연예인 중에는 양 국민 사이의 혼혈도 많아 브라질에서 일본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이다. 이를 기반으로 일본 정부는 브라질의 ISDB 채택이 자국 TV의 남미 공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일본 업체들은 평판 TV에서 한국 업체를 추월하지 못한 채 시장 점유율이 30%대로 내려앉았다. 브라운관 TV 시절 70%에 육박했던 점유율과 비교하면 반대 상황이다. 월드컵을 맞아 FIFA 공식 후원사 소니를 비롯한 일본 업체들이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지만, 국내 업체도 맞불 마케팅으로 녹록지 않다.
업계는 한국 TV의 성공으로 철저한 브라질 현지화를 꼽는다. 1995년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이듬해 LG전자까지 브라질에 TV 공장을 구축하며 일찍이 브라질 시장에 공을 들인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여기에 LG전자가 경제거점 상파울루에 모바일 연구개발(R&D) 센터도 운영하는 등 국내 업체의 현지화 노력으로 원세그 지원 휴대폰도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브라질 시장은 평판 TV로의 세대교체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곳으로 남미 시장의 거점”이라며 “일본에 유리한 시장 환경에도 (국내업체들의) 브라운관 TV 시절 현지화 노력이 디지털 시대에도 빛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