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는 눈부신 발전을 해왔고 IT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최근 보안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가 발생하며 ‘대한민국 IT의 현재와 미래’를 다시 한 번 논의해봐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보안뿐만 아니라 포털과 IT인력 시장의 공정성, 통신 분야의 비균형 발전 등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정보통신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은 지난 21일 서울 역삼동 삼정호텔에서 ‘대한민국 IT의 현재 그리고 미래: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하나’를 주제로 5월 정례토론회를 진행했다. 김인성 한양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를 비롯해 각계 전문가가 참여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김인성 한양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김국현 에디토이 대표
한수용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방송통신진흥본부장
임재명 한국인터넷진흥원 인터넷진흥본부장
신재식 정보통신산업진흥원 SW융합진흥본부장
사회=임춘성 연세대학교 정보산업공학과 교수
김인성 한양대학교 컴퓨터공학과 부교수
“뭔가 다시 시작하려면 신뢰성과 공정성을 회복해야 한다.”
김인성 한양대학교 컴퓨터공학과 부교수는 ‘한국 IT의 미래’를 주제로 진행한 첫 번째 주제발표에서 우리나라 IT 산업이 여러 면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안, 포털, 통신, 인력, 대외 경쟁력 등 여러 분야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재도약을 할 수 없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김 교수는 우선 한국 보안 산업의 문제점이 매우 심각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보이스 피싱을 당하지 않은 이유는 단지 ‘전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지 전화를 받으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보안을 위해서 무언가 프로그램을 내려 받아서 클릭하게 만드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다.
김 교수는 “은행에서도 의심 가는 거래를 파악해 두고선 공인인증서 관리는 결국 개인 책임이라며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 보안 산업은 공인인증서 강요를 포기하고 보안 시장에서의 경쟁을 도입해야만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포털의 공정성도 지적했다. 특정 키워드가 인기 검색어에 노출되지 않게 하고 검색 결과보다 광고를 먼저 보게 하는 등 공정성이 바닥에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불공정 검색과 콘텐츠 독점, 서비스 베끼기 등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포털 자체의 경쟁력 상실도 문제로 꼽힌다.
통신 산업은 ‘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터미널(CPNT)’ 중 네트워크를 제외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유일한 전략은 보조금이라는 설명이다. 네트워크 경쟁력을 악용해 망중립성을 위반하고 고의적으로 화질을 낮추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 IT산업이 다시 부흥을 하기 위해서는 공정성을 회복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며 “코스닥을 재정비하고 투자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 벤처를 활성화하는 일도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국현 에디토이 대표
“일제 강점기는 한국 관료 문화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고 ‘개발도상국형 관치성장’은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김국현 에디토이 대표는 오늘날 우리나라 IT산업이 발전의 한계를 보이는 이유를 파악하려면 먼저 우리 사회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관행을 바꾸지 못했기 때문에 IT가 사회 변화에 제대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김 대표는 IT가 사회변화의 촉매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북유럽과 싱가포르 같은 나라는 혁신의 핵심 수단으로 IT를 활용한다.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서 일정 기간 혼돈을 거친 후 새로운 질서가 잡혀 결국 사회가 성장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런 과정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한국은 60년대의 섬유, 70년대 철강, 80년대 조선 등 고도성장의 핵심 산업이 있어왔지만 소프트웨어나 비메모리 등에서는 위상이 낮다”며 “혁신적 사고가 필요한 영역에서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 배경에는 기능을 연마시켜 고용률을 높이고 사회발전을 꾀한다는 ‘동원경제’와 ‘인력자원설’이 자리한다고 강조했다. 두 이론에 따르면 실업자가 생기는 것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미숙련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IT인력 11만명 양성’같은 정책이 이런 정책의 일환이다.
하지만 동원경제는 사회가 성장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이런 정책은 결국 일제 강점기 때부터 뿌리 깊게 내려온 ‘애매한 목적과 순위를 모르는’ 관료주의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김 대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일제 시대의 잔재 때문에 국내 IT산업이 성장의 한계에 다다랐다”며 “IT가 산업 발전에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변경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리=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