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중소기업 기술혁신과 슈퍼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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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의 현대사회에서 자본과 시장은 첨예한 약육강식 논리를 따라 움직인다. ‘비즈니스 정글’의 한가운데 위치한 기업들은 시시각각 사투를 펼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잔인한 세계를 헤쳐 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기술혁신’의 날을 벼리고 있다.

기술혁신이란 새로운 기술의 개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기술이 시장에 도입돼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 경제구조의 변화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변화 과정을 뜻한다. 기업이 기술혁신에 사활을 거는 것은 기술혁신에 성공하면 엄청난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 침체 속에서 불확실한 변수가 계속 늘어나 선뜻 기술혁신에 나서기엔 위험부담이 크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효율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

최근 기술혁신을 위한 효율적인 수단으로 슈퍼컴퓨팅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상상을 초월한 계산능력을 가진 슈퍼컴퓨터를 제품 생산의 핵심 단계인 공학설계부터 적용해 품질 향상은 물론이고 개발비용 절감과 개발시간 단축까지 획기적인 경제적 효과를 얻고 있다. 대표적인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제품 개발에 슈퍼컴퓨터를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다.

슈퍼컴퓨터는 이미 자동차, 의약, 항공우주, 가정용품, 문화콘텐츠 등 각종 산업을 넘나들며 많은 제품을 디자인하고 제조 과정을 개선하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오늘날 고부가가치 창출의 경제 활동 범위가 확대되는 시점에서 ICT의 총집약체인 슈퍼컴퓨터가 산업 혁신에 미치는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를 놓칠세라 미국은 2020년까지 제품을 디지털로 제조하기 위해 범국가적 차원에서 중소기업들이 슈퍼컴퓨팅 기반 모델링·시뮬레이션을 활용하는 전략을 강력하게 추진해 ‘제조업 부활’을 꿈꾸고 있다. 일본도 슈퍼컴퓨터를 차세대 제조업에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해 추진 중이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슈퍼컴퓨터를 보유한 중국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해외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슈퍼컴퓨터의 산업체 활용은 앞으로 기술과 산업 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을 것이다. 슈퍼컴퓨터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효과’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 제조업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줄 중요한 열쇠임은 분명하다.

이미 대기업은 초고성능 컴퓨터를 보유하고 활용하기 시작한 데 비해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초고성능 컴퓨터는 언감생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기술혁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는 쉽게 흔들리고 말 것이다. 따라서 국내 중소 제조업체들이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제품을 설계하거나 생산에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가야 한다.

최근 몇 년간 여러 중소기업들이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제품 개발을 시도해 큰 효과를 얻었다. 지난해 KISTI 슈퍼컴퓨팅 지원을 받은 30여개 중소기업은 제품개발 시간을 56% 단축했으며 개발비용도 59% 절감했다. 이 성과는 매출 증대와 고용 유발로 이어졌다. 이제 더 많은 중소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슈퍼컴퓨팅 인프라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중소기업 수요를 충족시켜줄 만큼의 충분한 슈퍼컴퓨팅 인프라가 국내에 조성되진 않았다. 하지만 2011년 국가 초고성능 컴퓨터 활용과 육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국가 차원에서 중소기업이 슈퍼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확대되고 있다. 더불어 중소기업 슈퍼컴퓨터 전문활용 인력 양성 교육도 운영되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는 데에 슈퍼컴퓨터를 활용하는 일이 쉬워지는 만큼 기술혁신도 가까워질 것이다.

박영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장 yspak@kist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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