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입자’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로 전파됐다. 현대 물리학 이론인 표준모형에서 가정했던 17개 입자 중 유일하게 발견되지 않았던 입자가 발견되며 이론을 증명해냈다. 힉스입자 발견에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설치된 거대 강입자가속기(LHC)가 핵심 역할을 했다.

가속기는 초대형 연구시설로 건설비가 수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가속기를 갖추면 국가의 연구역량이 단숨에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기초과학 강국이 적극적으로 가속기 건설에 나서는 이유다.
국내에도 경주 양성자가속기, 포항 방사광가속기가 있다. 여기에 오는 2021년 최종 구축을 목표로 중이온가속기 건립이 추진된다.
이미 가속기가 있는데 엄청난 비용이 드는 가속기를 또 건설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가속기 종류별로 용도가 다르다. 양성자가속기는 양성자,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가속하는 것이다. 중이온가속기는 무거운 금속 이온을 가속하는 장치로, 희귀 동위원소를 생성해 각종 연구를 할 수 있는 시설이다. 금속 이온을 다시 금속판에 충돌시키면 희귀한 방사성 동위원소가 대량 생성된다. 금 이온을 중이온가속기에서 한 번 충돌시키면 5000개 이상의 새로운 입자가 만들어진다. 이 입자를 이용해 새로운 원소를 만들거나 물질의 성질을 연구할 수 있다. 일본은 지난 2004년 중이온가속기로 새로운 입자를 발견해 자포늄(Japonium)이란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만약 우리나라가 중이온가속기로 새로운 입자를 발견하면 ‘코리아’를 포함한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중이온가속기로 새로운 동위원소를 발견하면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 성과의 약 20% 정도가 가속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이온가속기는 핵물리 연구에만 쓰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천체물리, 원자력,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미래 에너지와 암 치료 등 의료분야에서 탁월한 성과가 기대된다.
중이온가속기는 에너지를 조절할 수 있어 정상세포를 손상하지 않고도 암세포를 표적 소멸시킬 수 있을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원자력 폐기물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이온가속기를 활용한 연구를 위해 국내를 찾는 해외 과학자들도 많을 것으로 점쳐진다. 핵물리, 물성과학, 의생명 등 글로벌 인재들이 함께 모여 공동연구를 수행함으로써 우리나라 기초과학 수준을 한 단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중이온가속기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큰 만큼 미국, 유럽연합 등 세계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건립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 중이온가속기 건립계획은 지난 9일 확정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제6차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위원회’를 열고, 중이온가속기 건립계획을 의결했다. 중이온가속기가 위치할 기초과학연구원(IBS) 건립도 함께 의결했다.
우리나라는 중이온가속기를 성공적으로 건립하기 위해 세계 6개국 전문가로 구성된 ‘중이온가속기 국제자문위원회’를 운영하는 등 공을 들여왔다.
이번에 확정된 건립계획에 따르면 미래부는 IBS와 중이온가속기 건립에 2021년까지 1조6662억원을 투입한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거점 지구 내 연구·산업·정주 시설과 연계 조성해 지식생태계 핵심 시설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IBS 본원은 엑스포과학공원에 11만3000㎡ 규모로, 캠퍼스는 카이스트 등 5개 특성화 대학에 분산 건립한다.
주목되는 것은 세계적인 수준의 중이온가속기 건립이다. 이번에 건설하는 중이온가속기는 세계 최고 수준의 희귀동위원소빔(200Mew, 400Kw)을 제공하는 가속기다. 특히 첫번째 가속으로 만들어진 초단수명 동위원소 빔을 다시 가속해 매우 희귀한 동위원소를 만들 수 있다.
중이온가속기 특수시설은 오는 6월경 ‘적격심사(PQ+TP)입찰’ 방식으로 설계사를 공모·선정할 예정이다. 설계자 선정 이후 기본설계(약 1년)와 실시설계(약 1년)를 분리 추진한 다음 2016년 하반기에 착공할 예정이다. 2019년까지 저에너지 가속기 관련 시설이, 2021년까지 고에너지 가속기 관련 시설이 신동지구에 들어선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