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e내비’만 제대로 구축됐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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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해난사고로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겼다.

막을 수는 없었나. 체계적으로 잘 대처해 희생을 최소화할 수는 없었나.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어찌 보면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은 존재다. 타이타닉호의 참사를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선박 내 구명정이 선박 승선 인원의 두 배를 태울 수 있는 수여야 하며, 이를 선박 좌현과 우현에 각각 배치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선박이 왼쪽이나 오른쪽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침몰해도 모든 승객을 한쪽에 있는 구명정으로 구조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는 지식을 습득했다.

과거 서해 페리호 사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을까. 이번 세월호의 참사는 어떤 교훈을 주고 있나.

국제해사기구(IMO)는 지난 2005년부터 ‘e내비게이션(e-navigation)’이라는 ICT 기반의 새로운 항해 안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해난사고를 방지하고 보다 안전한 항해와 해양환경 보호가 목적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IMO의 e내비게이션 개념을 확대해 국내 항해 선박을 포함한 한국형 e내비게이션(스마트 내비게이션)을 마련, 내년부터 5년간 연구개발과 인프라 구축에 나설 계획이다. 국내 해난사고의 72.5%는 연안을 항해하는 어선을 포함한 중소형 선박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에 e내비게이션이 구축되면 사고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줄일 수 있다.

사고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핵심에는 항상 인간의 실수가 있다. ICT를 활용한 e내비게이션은 반복되는 인간의 실수를 사전에 막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현재 IMO는 e내비게이션의 효과를 검증하는 항목별 실증 연구를 유럽 중심으로 집중 진행 중이다.

항목 중 하나로 선박의 항해 계획을 관제센터와 다른 선박에 알리는 내용이 있다. 예를 들어 선박이 예정된 항로로 항해하지 않게 되면 관제센터는 자동으로 항로이탈을 감지해 경보 조치를 취하게 된다. 관제사는 항로를 이탈한 선박과 교신해 문제를 즉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IT시스템을 구축하면 사고를 방지하거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IMO는 판단하고 있다.

e내비게이션의 또 다른 항목 중 하나는 선박의 주요 기기상태나 상황을 관제센터에 보고하도록 하는 조치다. 세월호 같은 노후 선박의 내부 기기 및 작동 상태를 관제센터가 파악해 항해 전후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 또한 기기 고장으로 인한 사고 예방에 상당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정 해역의 조류 및 기상정보와 조류에 따른 경고 메시지 자동 알림 기능 등도 e내비게이션에 포함된 항목들이다. 조류가 세거나 변하는 시기에 해당 해역을 통과하는 선박에 조류 정보 및 기상정보 등을 전자해도표시시스템(ECDIS)으로 제공하고,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면 선박 사고 위험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좀 더 일찍 e내비게이션 체제가 마련되고, 이를 기반으로 수색구조체계(SAR)와 구조행동 매뉴얼을 만들어 공유했다면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나타난 지휘체계의 혼선이나 때늦은 구조 활동 등 여러 혼란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스마트폰 시대에 우리는 많은 궁금증을 편리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손안에서 해결한다. e내비게이션 시대에는 ICT 기반의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시스템과 해양서비스 도구(MSP)의 이용 확산으로 보다 안전한 항해길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유영호 한국해양대 차세대선박IT융합기술센터장 yungyu@h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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