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의 미디어 공명 읽기]<17>원격섹스

원격섹스는 말 그대로 육체적인 접촉 없이 이루어지는 섹스를 말한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해주는 장치를 원격딜도(teledildonics)라 부른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물리적인 접촉 없이 재생산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 원격섹스는 생물학적 진화의 역사에서 근원적인 도전으로 간주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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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섹스 시스템에 대한 상상도

원격딜도라는 용어는 하이퍼텍스트라는 말을 고안하고 월드와이드웹의 발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테드 넬슨이 1975년 저서 ‘컴퓨터 해방/꿈의 기계’에서 처음 사용했다. 인간의 촉각적 감흥을 원격으로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원격섹스를 가능케 해주는 원격딜도의 개발은 생각처럼 쉽지 않지만 최근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기술적으로 원격딜도 시스템은 촉각적 감흥을 감지하고 발생시키는 바디 수트, 시청각 장치, 그리고 이를 연결해주는 통신망으로 구성된다. 통신망으로는 인터넷망이 사용되고 있는데, 블루투스가 활용되기도 한다. 후자를 활용하는 장치를 블루딜도라 부른다.

원격섹스는 거리의 극복이라는 원초적이고 본원적인 인간 욕망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통신기술은 원격섹스의 하부구조로 끊임없이 시도되어 왔다. 전화를 활용해 청각적 자극을 전달하는 이른바 폰섹스는 원격섹스의 근대적 출발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원격섹스의 본격적인 출발은 인터넷 등장 이후인 것 같다. 이를 넷섹스 또는 타이니섹스라 부른다. 타이니섹스는 타이니머드(TinyMUD)라는 게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가상 섹스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텍스트기반 온라인 게임인 머드, 사회적 삶을 구현한 ‘세컨드 라이프’와 같은 게임, 그리고 일상적으로 흔히 사용되는 채팅 서비스는 넷섹스의 공간으로 학술적으로 탐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원격으로 섹스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감각적 자극이 가상적으로 전달되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원격딜도는 가상현실(VR) 시스템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를 통해 가상적 공존, 가상적 접촉, 가상적 감흥이라 원격현전(telepresence)의 경험이 제공된다.

원격섹스 또는 원격딜도라는 말은 섹스의 파트너가 인간이 아닌 로봇이 되는 섹스 유형을 지칭하는 말로 확대되고 있다. 데이비드 레비는 2008년 가디언에 로봇이 새로운 섹스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런 전망은 거리 제거라는 측면과 더불어 인간의 사회적 관계와 생물학적 재생산, 그리고 욕망 충족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는 ‘포스트소셜’로의 전환이라고 부르면 과장일까?

문학적 상상력은 이를 미래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유명한 공상과학 소설가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그의 기념비적인 소설 ‘파운데이션’에서 섹스 없이 이루어지는 인간의 재생산을 묘사하고 있다. 한 행성을 서너명이 나누어 봉건 영주처럼 지배하는 사회에서 주인공이 여자 영주에게 키스를 하자 그 영주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는 육체적인 접촉에 대한 거부라기보다는 두려움이다. 사회적 교류가 SNS와 같은 소프트웨어 서비스에 매개되는 현 상황은 이런 육체적 접촉에 대한 두려움의 시작이 아닌가?

통신기술의 발전을 활용하며 구현되어 온 원격섹스에 대한 원초적 욕망은 현실화를 넘어 육체적 접촉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뀌면서 인간의 먼 미래와도 공명하고 있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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