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과학기술이 한국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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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T.S.엘리엇(Eliot)은 겨우내 얼었던 땅에서 돋아나는 푸른 새싹을 보고 늦게 찾아오는 봄을 탓하여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봄을 노래했다.

4월은 과학의 달이다. 전국 곳곳에서 체험, 전시 등 580여개의 다양한 과학기술행사가 열린다. 그러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의례적인 축사와 치사, 그리고 잠시 머물듯 사라져버리는 대중의 과학기술에 대한 무관심을 보면 과학의 달 4월은 정말 잔인한 달이다.

과학기술은 인류문명의 기반이고 국가경쟁력의 척도이자 국민행복의 원천인데, 왜 국가도 국민대중도 과학기술에 이토록 무관심한 것일까? 그것은 과학과 기술이 마치 물과 공기처럼 현대인의 삶 전체에 깊숙이 스며들어 과학기술의 진정한 가치가 당장 눈에 보이거나 과학기술에 대한 고마움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을 존중하고 기술자를 우대한 나라는 선진 강대국으로 발전하고 국민이 행복했으며, 기술을 천대하고 기술자를 탄압한 나라는 국력이 쇠퇴하고 국민이 불행했음은 인간사회의 예외 없는 법칙이고 역사적 진실이었다. 국민소득(1인당 GDP) 100달러가 안되던, 원조 받던 가난한 나라를 불과 한 세대 만에 국민소득 2만달러대의 원조하는 의로운 부자나라로 거듭나게 한 한강의 기적도 70∼80년대 과학기술자가 가장 우대받던 시절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국민소득이 선진국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태에서 한국경제는 성장동력을 상실하고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할 판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구하는 창조경제와 제2의 한강의 기적은 저성장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한국경제를 다시 한 번 도약시키고자 하는 최고 통치권자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과학기술계도 산업기술계도 아직 뚜렷한 변화를 체감하지는 못하고 있다. 국가와 민족이 나아가야할 올바른 방향은 이미 결정됐고,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됐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해야 할지 그 절차와 방법 즉 국가과학기술정책에 관해서는 아직 국민도 과학기술계도 상당한 갈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회 창조경제 활성화 특별위원회에서는 창조경제 사업이 마스터플랜도 없고 컨트롤 타워도 없어 부처간 불협화음만 내며 표류하고 있다는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있었다.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창조경제 아젠다들도 지나간 정부의 지식경제, 혁신경제, 녹색경제 등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특히 창조경제를 협소하게 정의해 창업에만 너무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건국 이래 첫 이공계 출신 대통령에 거는 기대가 더 크고 각별할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이러한 현실 때문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고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에게는 당장 걱정하고 처리해야할 긴급한 사안들이 산적해 있을 것이다. 긴급한 사안들 그 어느 하나도 허술히 할 수 없는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미래가 없는 현재, 내일의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 오늘의 행복만을 요구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4월 과학의 달을 맞이하여 ‘덜 긴급하지만 더 중요한 국가과학기술’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을 다시 한 번 촉구하고자 한다.

오늘 21일 과학의 날은 과학기술인들의 잔칫날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국민행복을 위해 과학기술인들이 헌신과 희생을 서약하는 날임을 명심하자.

이부섭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bslee@kof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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