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빈 국립과천과학관장은 독특했다. 뒷면이 다른 명함을 총 10개나 갖고 있었다. 이름이 적힌 명함 뒷면에는 영문 이름이 아닌 그림 두 폭이 있었다. 왼쪽 그림은 ‘라부아지에 부부의 초상’이고 오른쪽 그림은 고흐의 ‘삼나무가 있는 밀밭’이었다. 그는 라부아지에 부부의 초상은 사실주의에 기반한 그림이고 고흐의 그림은 인상주의 기법의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김 관장은 무엇이 100년만에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변화시켰는지 물어봤다.
그는 바로 ‘과학’이라고 말했다. 과학적 기술을 이용한 카메라가 나온 뒤 더 이상 현실과 똑같이 그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김 관장은 1800년대 화가가 받은 인상을 그림에 투영하는 ‘인상주의’가 유행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카메라가 세상을 바꾼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폴레옹 전속화가인 자크루이다비드가 질량보존의 법칙을 만든 화학자 라부아지에 초상화를 그린 것 또한 화학자에 대한 존경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그 외에도 뉴튼과 아인슈타인, 자석과 나침반 등 간단한 그림이 그려진 명함이 9종류 더 있다. 명함 뒤편에 그려진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다보니 전기문명, 유전공학, 우주공학 등 다양한 과학 분야에 대해 알게됐다.


김 관장의 명함은 과학을 알릴 수 있는 홍보 방안을 고민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명함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열정적인 과학 전도사다. 주말에도 과천과학관으로 출근한다. 주말에 관람객이 가장 많이 몰리기 때문에 집에 앉아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그는 “주말에 집에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어쩔 수 없이 과학관으로 출근하게 된다”며 “내가 나오면 직원들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가장 관람객이 많이 몰리는 날에 어떻게 쉴 수 있겠느냐”며 웃었다.
과천과학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이유는 과학관 설립부터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관 설립 당시 추진기획단장을 했으며 설립 이후에는 전시기획단장을 맡았다. 지금은 과천과학관장이 됐으니 과학관 업무만 세 번째인 ‘과학관 전문가’다.
김 관장은 관람객 숫자나 전시물 교체 주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관람객들이 과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전시물 기획에 중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전에 책상에 앉아서 일할 때는 교체물 주기와 관람객수 등 객관적인 지표를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현장에 나와보니 과학관을 찾는 사람 입장에서 기획을 잘해서 좋은 전시물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관람객 수가 단순히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과학관에는 단체 행사가 많아 어쩔 수 없이 오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찾아오는 한 사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과학관을 찾아올 수 있도록 전시물을 기획하고 있다. 김 관장은 “과학의 원리를 보고, 듣고, 만지고, 체험하면서 한번에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전시물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관장의 명함 뒷면에 나와있는 그림처럼 과학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전시물들이 올해 말 과천과학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