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구글 아라 프로젝트 `회색` 폰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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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폰(Gray Phone)’. 구글이 모듈형 스마트폰 프로젝트 ‘아라(ARA)’를 추진하며 만드는 스마트폰의 닉네임이다.

통상 기업 경영 관점에서 ‘회색’은 단순히 색깔을 의미하지 않는다. 흰색과 검은색의 중간색, 어떤 색깔도 입힐 수 있는 빈 공간 즉 플랫폼을 이를 때 쓰인다. 과거 한 유명 의류업체가 빠르게 여러 색깔의 옷을 만들기 위해 회색으로 미리 중간 염색을 해둔 기법은 제조업 물류의 교과서처럼 남아있다.

구글이 만드는 것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바로 ‘플랫폼’ 이라는 소리다. 폴 에레멘코 아라 프로젝트 팀장도 “그레이는 누구나 수정할 수 있다는 의미로 붙인 것”이라며 “우리의 목표는 최대한의 수정”이라고 말하는 배경도 여기 있다.

수년 만에 출현한 새 플랫폼이다.

지금까지 모바일 산업은 수년을 주기로 플랫폼 골격을 바꾼 기업이 주도해 왔다. 피처폰 시절의 노키아가 그랬고 스마트폰 시대의 애플이 그렇다. 노키아는 반조립 부품을 써서 시골 마을까지 번개같이 공급하는 저가 하드웨어 플랫폼으로 세계를 점령했다. 애플은 앱스토어로 세계에 앱을 공급하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창시자다. 각각 스마트폰 외부와 내용물을 사용자에 맞추고 공급자 생태계를 만들었다.

노키아와 애플을 뒤쫓던 한국 기업은 양쪽의 장점을 취하며 플랫폼 유행에 편승하는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을 구사해 왔다.

아라 프로젝트가 한국 모바일 기업에 전성기를 안긴 전통적 모바일 하드웨어 생태계를 위협하고 우리를 긴장시키는 가장 큰 이유다. 50달러(약 5만2000원) 가격표가 유혹하는 새로운 하드웨어 생태계의 도래다. 구글은 이미 ‘향후 50억 명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직접 만들게 될 플랫폼’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더 이상의 빠른 속도, 더 많은 용량, 더 선명한 디스플레이도 큰 감동을 주기 어려운 모바일 산업 혁신은 이제 다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생태계를 바꾸는 기업이 다음 세대의 주인공이다. 한국 기업의 다음 혁신에서도 세계가 열광하는 플랫폼이 선보여지길 기대한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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