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dCi 6MT, 2WD 모델 스위스 현지 시승기
스위스 제네바는 아름다운 산과 눈, 호수가 어우러진 ‘휴양지’로 잘 알려진 도시다. 또한 물가 비싸기로 소문난 곳이기도 하다. 전망 좋은 곳에 지어진 집들은 하나같이 으리으리하고, 그 앞에 세워진 차들은 각양각색이다. 도로를 누비는 차들도 다양하다. 특정 국가의 특정 브랜드가 압도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이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자동차 강국에 둘러싸인 스위스의 지리적 특징도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지난 2월, 프랑스 파리를 거쳐 제네바로 향했다. 푸조나 시트로엥, 르노 등 프랑스 차가 눈에 자주 띈다. 프랑스와 맞닿아 있는 지역인데다 디자인이 화려해서 그런 듯싶다. 커다란 식당 앞이나 호텔 앞엔 독일 번호판을 단 BMW와 벤츠들이 보인다. 그리고 조금 더 적응될만하니 SUV `콰시콰이`와 `쥬크` 등 닛산 차가 `의외로` 눈에 많이 띈다. 국산차도 종종 보였다. 현대자동차의 i10, i20 등 유럽 전략 모델 외에도 벨로스터, NF쏘나타가 있었고, 가장 놀랐을 땐 기아 봉고 트럭을 봤을 때다. 이쯤 되면 정치적 중립을 넘어, 자동차 업계의 중립지대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이번 일정은 우여곡절 끝에 `닛산 쥬크 1.5 dCi 2WD 수동변속(6단)` 모델과 함께했다. 이사람 저사람 타는 차라 걱정했지만 겨울용 타이어도 끼워져 있고, 전반적인 관리 상태가 괜찮았다. 게다가 소형 디젤 수동차라니, 장거리 여행엔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해가 거의 질 무렵, 키를 건네 받고 짐부터 실었다. 29인치쯤 되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 두 개와 메고 있던 배낭까지 다 넣어야 했다. 트렁크에만 실을 땐 두 가방을 겹쳐 놓아야 해서 그보단 뒷좌석 등받이를 접는 게 속 편한 방법이라 판단, 바로 실행에 옮겼다. 넉넉한 공간이 생겼다. 어차피 두 명이 탈 거라 뒷좌석은 큰 의미가 없고, 짐 싣는 곳으로 쓰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뒷좌석을 접고 가방을 실었을 때 얻은 수확이 있다. 차 무게중심이 바뀌지 않았다는 거다. 트렁크에만 잔뜩 실으면 짐 무게 탓에 코너링 때 차가 쏠릴 가능성이 높고, 커다란 가방들이 시야를 가리기까지 한다. 물론 가방들이 굴러다니지 않도록 잘 놓는 게 중요하겠지만…
다음날. 제네바의 상징 중 하나인 ‘레만(Lac Leman)호수’ 주변을 둘러보고, 언덕 위 부자동네를 거쳐 멀리 눈 구경까지 하러 가는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며 출발했다. 제네바를 둘러본 뒤 한 시간 반쯤 달려 도착한 덴 프랑스 샤모니 몽블랑(Chamonix Mont Blanc)이다.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가 맞닿은 곳이다. 최초의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이며, 스키어와 보더들의 성지로 불린다. 더불어, 절벽 옆으로 뚫린 굽은 도로와 경사가 심한 산길까지 어우러진 곳이다. 눈 쌓인 설원의 풍경을 감상하며 드라이빙을 즐기기에 더없이 훌륭한 장소가 아닐까 싶다.
비와 눈이 섞여 내리더니, 산 중턱부턴 눈이 생각보다 많이 왔다. 노면은 눈과 물이 섞인 질퍽한 상태에서 점차 미끄러운 눈길로 바뀌었다. 규정속도보다 천천히 달릴 수밖에 없었고, 엉덩이에 AWD라고 쓰여진 다른 차들에게 앞지르기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익숙치 않은 곳에서 눈길 와인딩이라니 답이 없다. 내비게이션 지도를 살피며 천천히 코너를 공략해야 했다. 그나마 타고 있는 쥬크가 앞바퀴 굴림 방식에다 윈터타이어가 끼워진 상태여서 다행이었다.
몽블랑을 가로지르는 터널(듀넬 듀 몽블렁)을 이용하면 이탈리아로 빠르게 갈 수 있다. 통행료는 편도 6만원이 넘는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들은 하나같이 두꺼운 눈 이불을 뒤집어 쓴 상태다. 수십km에 이르는 터널을 한참 동안 달렸다. 마침내 도달한 터널 출구는 그야말로 다른 세상. 온통 눈 천지다. 말 그대로 ‘겨울왕국’이었다. 산길을 내려가며 주변을 둘러보니 마을 사람들은 눈 치우기에 한창이다. 빗자루로 쓸어내는 수준이 아니라 제설차로 눈을 퍼 나르고 있었다. 지붕엔 1미터씩 눈이 쌓여있고, 회색 빛 하늘에선 눈이 쏟아진다. 오가는 차들은 모두 전조등을 켠 상태다. 멀리서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낮이건 밤이건 항상 켜고 다닌다. 다른 차에게 내 위치를 알리기 위해서다.
어느덧 목적지인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칸티나)가 모여있는 곳이다. 작은 길은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아서 눈이 그대로 쌓여있다. 바퀴가 살짝살짝 헛돌기 시작한다. 풍경은 너무나도 멋지고 놀라웠지만, 한편으론 돌아갈 길이 걱정이었다. 괜히 사람이 거의 없는 곳에서 차가 눈에 파묻히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낭패다.
이런 우려는 금세 현실이 됐다. 좁은 길에서 무리하게 돌진해오던 아줌마의 차를 피하기 위해 운전대를 꺾었다가 바퀴가 눈 무더기에 걸렸다. 무심코 가속 페달을 밟았는데, 차가 힘을 빼며 바퀴가 헛돈다. VDC(차체 자세 제어장치)를 그대로 켜둔 상태였다. 접촉사고는 피했지만,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탈리아 ‘김여사’도 대책 없긴 마찬가지였다. 정말 얄미웠다.
행운이 따른 걸까. 마침 멀리서 눈 치우던 트랙터로더를 발견, 도움을 청했다. 인심 좋은 농장 아저씨는 능숙한 솜씨로 빠져나갈 길을 미리 만들었고, 그동안 설치한 견인고리에 두꺼운 밧줄을 묶었다. 시동을 걸고 최대한 힘을 노면에 전달하기 위해 VDC를 껐다. 트랙터가 힘을 내자 쥬크가 조금씩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때 가속페달을 밟아 힘을 보탰고, 드디어 앞으로 나아간다. 간신히 위기를 벗어났다.
쥬크는 우리나라에 1.6ℓ 터보 가솔린 모델만 들어와있다. 강력한 주행성능을 뽐내기 위해서다. 직진 가속성능도 좋지만, 엔진 회전수를 충분히 활용하며 산길 와인딩 등 스포츠 드라이빙에 제격이다. 이번에 탄 차는 르노삼성 QM3에 들어간 것과 같은 1.5ℓ 디젤엔진을 탑재된 모델이다. 호흡이 짧지만 펀치력이 좋다. 그리고 높은 연료효율이 특징이다. 궂은 날씨에 먼 곳까지 달려왔는데도 절반이 넘게 남았다. 연료탱크 용량은 50리터.
기어 변속감은 일반적인 승용차처럼 무르지 않다. 클러치 페달도 가볍지 않다. 오른손과 왼발에 전해지는 감촉이 스포츠카처럼 딱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에 가깝다. 생각지도 못한 매력이 있었다. 쥬크 가솔린의 최신 CVT(무단변속기)와 형제 차종인 르노삼성 QM3의 듀얼클러치 변속기까지 맛본 터라 쥬크의 수동변속기가 남다른 감동을 줬다. 물론, 수동변속기 버전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가능성은 매우 낮은 터라, 이런 감동은 해외에서 맛봐야 한다.
소형 디젤엔진과 수동변속기 조합은 예상보다 즐거웠다. 운전의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주머니 사정까지 배려할 수 있다. 여기에 탄탄한 주행감각과 개성이 더해졌다. 그게 쥬크 디젤 1.5 dCi의 매력이다.
제네바(스위스)=박찬규 RPM9 기자 st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