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배고프다.”
전 국민을 열광하게 했던 2002년 월드컵 당시, 더 많은 승리와 더 큰 목표를 갈구한다는 의미로 히딩크 축구대표팀 감독이 썼던 은유적 표현이다. 이후 여러 사람들이 여러 상황에서 다양하게 인용해 쓰고 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창업을 꿈꾸는 사람부터 성장 단계나 매출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기업이 성장과 지속경영을 위해 새로운 사업과 제품 아이템에 “여전히 배고프다”고 한다. 창업가와 기업의 이러한 허기와 갈증을 공공기술을 활용해 해소할 수 있는 제도가 바로 ‘연구소기업’이다.
연구소기업은 정부 출연연구소와 대학이 보유한 기술을 직접 사업화하기 위해 자본금의 20% 이상을 출자해 설립하는 기업이다. 이는 공공연구기관의 첨단기술과 민간의 경영 노하우를 효과적으로 결합해 성공적인 사업화 촉진을 위해 2006년부터 연구개발특구에서 시행되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제도(기업)다.
예를 들어보자. 콜마비앤에이치라는 회사가 있다. 화장품 및 의약품 전문 제조업체인 한국콜마가 51%의 자본을 투자하고,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방사선 이용 기술’을 자본으로 환산해 지분의 38.8%를 투자해서 설립된 연구소기업이다. 2006년 매출액이 16억원에 불과했던 작은 벤처기업은 2012년 해외수출 400만달러를 포함해 883억원의 매출을 달성한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 중이다. 이 회사 대표는 성공비결을 출연연의 우수한 기술과 이를 제품화해 생산하는 기업의 역량, 마케팅 능력 등 세 축이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특구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14개 공공연구기관이 설립한 46개의 연구소기업이 운영 중이다. 성공적인 기술사업화를 통해 가시적인 성과 창출이 기대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프랑스, 중국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 국립정보기술·자동화연구소(INRIA)는 다수의 연구소기업을 설립하고 ‘Born of INRIA’라는 명칭을 부여해 연구소와 연구소기업 간 지속적인 협력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도 출연연·대학에서 기업 설립을 통한 사업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칭화대는 100여개의 샤오반 기업을 직접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과학원은 120개의 산하연구기관을 통해 렌샹그룹 등 800개의 연구소기업을 운영 중이다.
현 정부 들어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 기업, 공공연구기관, 대학 등 모든 혁신 주체의 역량 결집과 개방형 혁신활동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매년 약 12조원대의 막대한 예산을 바탕으로 출연연과 대학에서 나오는 첨단기술이라는 ‘씨앗’을 기업 현장이라는 ‘밭’을 통해 열매 맺고 수확할 수 있는 기술사업화 환류 체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연구소기업이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창업 또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아이템 발굴에 여전히 배고픔과 목마름이 느껴진다면 연 구개발특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구 내 출연연과 대학은 기업과 소통을 강화하고 기술 활용 채널을 다양하게 제공하는 등 창업과 성장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도 2017년까지 100개 이상의 질 좋은 연구소기업을 설립 육성하는 계획을 구체화하고 성장단계별 지원체계를 구축, 운영하고 있다. 이는 공공기술의 문턱이 그만큼 낮아졌고, 창업자나 기업가가 미래를 위한 또 다른 사업 전략과 유망 비즈니스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공공기술에 대한 접근이 한결 쉬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경제의 근간은 융합이다. 공공기술과 민간경영이 자연스레 융화돼 연구소기업으로 꽃을 피우고 창조경제의 향기가 널리 퍼지기를 기대한다.
이선제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전략사업본부장 sjlee@kic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