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몇 차례 신호등 앞에 멈춰 서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하게 마련이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몇 분의 시간은 그리 유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엔진이 공회전하면서 낭비되는 연료나 뿜어져 나오는 공해 물질은 환경에도 좋지 않다. 그런데, 신호등 변경 시간을 예측해 주행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면 어떨까. 불필요하게 기다리는 시간도, 낭비되는 연료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독일 자동차 회사인 아우디는 지난달 열린 세계 최대 소비자가전박람회 `CES 2014`에서 이 같은 기술을 소개했다. 온라인 교통신호 정보제공 서비스로 불리는 이 기능은 운전자가 다음 신호등이 녹색 신호일 때 통과할 수 있도록 적절한 속도를 알려준다. 아우디만 아니라, 이번 박람회에는 모터쇼를 방불케 할 정도로 여러 자동차 회사가 정보통신기술(ICT)과 융합된 스마트 자동차를 선보였다. 이제는 자동차가 CES에서 조연이 아니라 주연급으로 불려야 할 만큼 비중이 높아졌다.
흥미로운 건 자동차가 얼마나 빠르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지는 주행 성능보다는 ICT와 접목된 최첨단 기능과 다양한 ICT 기기와 연결을 통한 편의성이 경쟁의 포인트였다는 점이다.
이 같은 변화는 루퍼트 스태들러 아우디 회장이 CES 기조연설에서 언급한 내용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다음 세대 자동차 진화는 ICT와의 융합에서 나오고, 자동차의 궁극적 도전 과제는 연결성(connectivity)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해 자동차의 미래가 ICT에 있음을 역설했다.
이것은 바로 자동차를 포함한 다양한 기기가 통신망을 통해 연결되는 이른바 `초연결(hyper connection) 사회`가 눈앞에 다가왔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경향은 행사 곳곳에 드러났다. 손목 혁명(WristRevolution)과 건강 기술(FitnessTech)이라는 낯선 명칭의 전시부스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다양한 스마트 시계와 몸에 착용하는 건강 모니터링 기기를 전시, 화제가 됐다. 조만간 우리는 스마트폰만이 아니라 여러 대의 모바일 기기를 몸에 착용하게 되고 각 기기는 통신망으로 서로 연결돼 정보를 주고받으며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는 오는 2020년까지 240억개 모바일 기기가 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수많은 모바일 기기를 통해 원활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이들을 연결하고 제어할 수 있도록 지금보다 향상된 통신망을 갖춰야 할 것이다.
전면에 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혁신적 첨단 기능과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초연결 사회는 우수한 통신망이 전제돼야 한다. 통신사업자와 다양한 산업간 협업이 활발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신사업자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 AT&T는 커넥티드카(connected car)와 관련한 기술개발을 위해 `드라이브 스튜디오`라는 연구 시설을 개설한다고 발표했다. `드라이브 스튜디오`를 통해 AT&T는 아우디, GM, 닛산, 테슬라와 같은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와 ICT 융합을 위해 협력할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AT&T는 ICT와 자동차 기술의 허브 역할을 하겠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우리나라 통신사업자도 일찍이 탈(脫)통신을 선언하고 다양한 융합 서비스를 창출하기 위해 연구개발과 투자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각종 규제, 다른 산업과의 시각 차이 때문인지 발걸음이 더딘 것 같아 안타깝다.
초연결 사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올 것이고, 우리는 더 이상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탈통신과 ICT 융합은 통신 산업이나 ICT업계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다. 보다 적극적 산업간 협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설정선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부회장 12jss@kto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