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과 방송통신이용자보호법 등 ICT 분야의 굵직한 규제 법안들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특히 단통법에는 일부 제조사가 강한 반대 의사를 내비쳐 본회의 통과가 아직 불투명한 상태로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2월 임시국회 개의를 앞두고 우려되는 점은 규제를 `무조건 줄여야 할 대상`으로 보는 최근 우리 사회의 시각이다. 당장 대통령부터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규제 총량제` 도입 의사를 밝혔다. `규제 성적표`라는 말도 공공연히 쓰인다. 규제를 많이 없앨수록 좋은 성적이 매겨진다.
규제가 기업을 옥죄는 것은 맞다. 주로 `무엇을 하면 안 된다`거나 과세 부담을 지우는 등의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기업은 여기에 맞서 `규제는 악(惡)`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 등 기업인 단체는 연일 “과도한 규제로 기업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규제 수를 줄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왜 규제가 만들어졌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규제의 배경에는 항상 `보호 대상`이 있다. 단통법은 휴대폰 보조금 정보에 어두워 다른 사람보다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소비자가 보호대상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규제 총량제 도입까지 추진하면서 이런 것을 따지지도 않고 규제 혁파 건의를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일례로 최근 현대자동차는 “저탄소협력금 제도 도입이 고용창출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윤상직 장관에게 건의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차량을 구매할 때 보조금을 주고 배출량이 많은 차를 살 때는 부담금을 물리는 제도다. 모두가 누리는 자연환경이 보호 대상이다.
규제를 없애려면 규제로 얻는 이익보다 피해가 더 많다는 것이 증명될 경우 이뤄져야 한다. 탄소배출을 줄여 얻는 이익보다 국내 자동차 산업에 닥쳐오는 위기가 더 크다는 객관적 근거는 전무하다. 단통법도 마찬가지다. 차별적 보조금으로 인한 피해는 속출하고 있는데, 법 시행 이후 기업이 입게 될 피해가 이보다 더 크다는 근거는 없다. 규제 혁파 숫자놀음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는 얘기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