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제조업 로드를 가다]일본-일본은 한국의 미래?

Photo Image
한국과 일본의 경제성장률 궤적. (자료:한국은행, 일본 내각부)

“한국 고객사에 대응하기 힘들다고 하지만 이미 겪었던 일이라 단련이 됐습니다.” 일본에서 만난 현지 소재업체 임원은 이 같은 얘기를 들려줬다. 예전 소니·샤프 등 자국 내 고객사를 상대할 때와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한국 대기업에 의존하는 지금, 업의 속성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제조업에서는 완제품·부품·소재로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가 숙명적인 현실이다. 세트 업체에 다양한 후방 산업군이 종속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 공급망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제조업의 경쟁력을 결정짓기도 한다. 갑·을 관계의 지위를 이용해 협력사를 강도 높게 관리하는 전통이 한국 대기업에만 있는 건 아니다. “소니가 잘 나갈 때는 이보다 더 했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단편적인 사례지만 한국 제조업이 과거 일본과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는 걸 감안하면 허투루 듣기 힘들다.

◇한·일, 가깝고도 먼 사이

실제로 한국 경제는 지난 1990년대 일본과 유사한 점이 많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일본 경제 성장률은 지난 1960년대 10%에서 지난 1990년대 이후 평균 1% 미만으로 떨어졌다. 한국은 1990년대까지 7~9% 고성장을 유지하다가 2000년대 4%,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평균 3%대로 낮아졌다. 10~20년의 시차를 두고 유사한 성장률 궤적을 보여 왔다.

부동산(자산) 가격 하락에 따른 내수 부진, 고령화로 인한 경제 인구 감소 추세도 비슷하다. 일본의 고성장을 주도했던 산업들이 현재 한국의 주도적인 산업이라는 점도 유사하다.

지금의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가 소니·파나소닉·샤프 등 일본 대표 기업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위기론, 샌드위치론이 계속 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식 성장 모델을 뛰어넘는 중국

제일모직은 지난해 일본 닛토덴코 출신 편광판 전문가를 영입해 임원으로 앉혔다. 과거 반도체·전자 산업에서 일본인을 영입해 기술을 전수받았던 삼성은 근래 신성장동력으로 소재 사업에 주목한 뒤 또 다시 일본 전문가들을 유치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출신 한 연구원은 “1990년대 삼성 종합기술원에는 고임금을 받는 일본인 기술 고문들이 여러 명 있었다”며 “그들에게 한 마디라도 더 듣고 배우는 게 국내 연구진들의 지상 과제”였다고 회고했다.

기술을 습득해 제조업을 육성하는 건 지난 1970~1980년대 일본에서 일었던 붐이다. 미국·독일 등에서 전문가를 데려와 기술을 국산화시키고 제조업을 키웠다. 한국이 일본의 기술 경쟁력을 넘어서기도 전에 이제는 중국이 같은 방법을 쓴다.

중국의 대표 디스플레이 업체 BOE·CSOT 등에는 옛 하이디스 등 한국 기업 출신 임원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시장 주도권을 중국에 내줄 날이 머지않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협력사 관리 방식도 그대로 배웠다. 국내 장비 업계 관계자는 “협력사를 경쟁시키고 원가 구조를 파악해서 단가를 후려치는 것까지 점점 더 고도화된 방식으로 답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니이하마(일본)=오은지기자 onz@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