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제조업 로드를 가다]아세안-⑥말레이시아·미얀마/동남아 허브 말레이시아 "시장을 보고 진출하라"

싱가포르·태국과 육로로 국경이 접하고 필리핀·중국은 남중국해만 건너면 닿을 수 있는 곳, 말레이시아는 아세안의 중심지다. 쿠알라룸푸르에서 태국 방콕, 베트남 호치민, 미얀마 양곤 등 각국의 수도까지 비행기로 두 시간 내외면 충분히 도달한다. 사회 인프라가 훌륭하고 비공식언어지만 영어가 통용된다는 점은 전 세계 기업들이 말레이시아를 동남아 비즈니스 허브로 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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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큐셀 말레이시아공장. 한직원이 모니터를 통해 생산공정을 점검하고 있다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 중진국 대열에 들어서면서 말레이시아는 제조업 발전에 장벽을 만났다. 말레이시아의 주력 산업이 서비스업인 이유다. 제조업 측면에서는 투자 매력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현지 시장을 공략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인당 GDP가 높다는 것은 그 만큼 소비력이 높다는 뜻이 된다. 동남아 시장 전체를 보고 물류 요충지를 찾는다면 그 답도 말레이시아다.

오는 2020년 1인당 국민소득 1만 5000달러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주목한 것이 첨단 제조업이라는 점은 눈여겨 볼 만한 요소다. 코트라 관계자는 “말레이시아는 그동안 외국인 직접 투자를 유치해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룬 전형적 국가”라며 “다른 동남아에 비해 높은 인건비 때문에 이제 첨단 기술 제조업 분야에서 외국인 투자를 보다 많이 유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업하기 좋은 나라

지난 해 세계경제포럼(WEF)은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 말레이시아를 우리나라보다 한 단계 높은 24위로 평가했다. WEF는 제도적 요인, 인프라, 교육, 노동 시장, 금융 시장, 기술 수준 등을 모두 종합해 순위를 산정한다. 말레이시아의 사업 환경이 우리나라보다 못하지 않다는 뜻이 될 수 있다.

구석구석 잘 닦인 도로 인프라도 훌륭하다. 인근 동남아 국가와는 다른 느낌이 들 정도다. 공식 언어는 말레이어이지만, 실질적으로 영어를 제 2공용어처럼 사용한다는 점은 글로벌 기업들에게 큰 매력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처음 중국에 진출할 때 조선족이 많은 동북 3성을 택했던 것과 같은 이치다. GE나 인텔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아시아 거점으로 말레이시아를 주목한 것은 지리적 이점 때문만은 아니다. 인건비가 비싸다고는 하지만 싱가포르보다는 싸다. 말레이시아가 동남아 비즈니스 허브로서 역할이 커지는 이유다.

천연 자원 또한 풍부하다. 천연 고무와 팜오일 뿐만 아니라 원유와 천연가스·주석 등 다양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자원 개발도 활발하다. 원유와 천연가스의 확인 매장량은 아시아 국가 중 중국·인도네시아에 이어 3위다. 주석은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아세안의 중심, 동남아 시장의 관문

지난해 10월 동부대우전자는 세탁기를 생산하던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냉장고도 생산키로 했다. 동남아 시장 수요 증가에 따라 취한 조치다. 지리적으로 아세안의 중심에 있는 말레이시아 생산을 통해 적기 공급 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다. 동부대우전자는 미얀마·브루나이·라오스와 같은 동남아 신흥 국가로 진출하기 위해 말레이시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유영재 동부대우전자 말레이시아 법인장은 “생산 다변화를 통해 동남아 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고려제강도 동남아 시장 공략을 위해 말레이시아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사례로 꼽힌다.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 지역에 공장을 세운 이 회사는 동남아 시장 뿐만 아니라 중동 시장으로 뻗어 가는데 이곳을 활용했다. 현지법인은 생산량 85% 이상을 수출하고 있으며, 수출 대부분은 아세안 국가들과 중동으로 나간다. 지난 2012년에는 말레이시아 현지에 연구개발센터까지 설립했다. 삼성전자와 삼성SDI, 삼성코닝정밀소재가 함께 세운 삼성 세렘방 전자복합단지의 생산품목도 꾸준히 늘어났다. 전자레인지를 시작으로 모니터, 부품 등으로 생산 품목을 다양화했다. KOTRA에 따르면 삼성 전자복합단지의 유발 매출이 말레이시아 전체 GDP의 약 2%에 해당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말레이시아가 동남아 시장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지만, 내수 시장 자체도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자동차 시장이 대표적이다. 말레이시아 자동차 판매량은 연간 약 63만대에 달한다.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생산량도 늘고 있다. 생산량은 매년 8~10%씩 증가하고 있다. 자국 완성차 업체가 2개나 있으며, 도요타·혼다 등 일본 업체들도 이곳에서 자동차를 생산한다. 자동차 산업이 형성되면서 관련 부품 업계도 성장했다. 말레이시아에는 700여개의 자동차 부품 업체들이 있으며, 자국산 부품 국산화율이 80%에 이를 정도다.

전기전자제품 수요가 큰 것도 관련 산업을 키우고 있다. 말레이시아 제조업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석유·고무 제품이며, 그 다음이 바로 전기전자 제품이다. 오는 202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1만5000달러를 달성하기 위한 경제 변혁 프로그램에도 전기전자 산업이 국가 핵심 영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반도체 후공정, 신재생 에너지에 주목

말레이시아에는 인텔·르네사스·페어차일드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후공정 라인이 유난히 많다. 후공정 라인은 적정 기술 수준을 보유하면서도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역에 설치된다. 이런 요구에 맞아 떨어지는 곳이 말레이시아다. 대형 설비 투자가 필요한 제조와 설계는 선진국에 많지만 후공정은 말레이시아에 밀집돼 있다시피 하다. 유니셈·카르셈 등 자국내 토종 반도체 후공정 기업들이 탄생했던 이유다.

최근에는 신재생 에너지 관련 기업들의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2000년대 후반부터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11년에는 신재생에너지법을 시행해 오는 2030년까지 4000㎿의 전력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도입한 것도 관련 제조업 성장에 불을 당기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으로는 LG전자가 말레이시아 남서부에 태양광 발전소를 시공한 바 있다. 한화는 말레이시아에 있는 독일 큐셀의 태양광 공장을 인수해 운영 중이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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