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대 가장 많은 왕조가 수도로 삼았던 시안(西安)은 옛 이름 창안(長安, 오랫동안 편안하다)이 말해주듯 `편안한` 곳이다. 한국에서 한파가 몰아치는 12월에도 이곳에서는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좀처럼 드물다. 비옥한 황토는 3000년 역사 동안 밀농사를 뒷받침하며 시안 주민들의 먹을거리를 책임졌다.
지금은 시안을 고도로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진·한·당 등 가장 융성했던 왕조의 수도는 첨단 기술로 다시 한번 옛 영광을 되찾는 모습이다. 중국의 미래 먹거리는 시안에서 만들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이어 최근에는 미국 존슨앤드존슨이 생산기지를 시안에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흔히 진시황릉이나 병마용갱을 보러가는 관광도시로 여겨졌지만 시안은 과거와 현재를 관통해 중국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최첨단 기술을 보유한 전략적 요충지다. 지금도 불가사의로 불리는 병마용의 위용은 예전 이들의 기술이 어땠는지를 보여준다. 현재 항공·우주산업기지와 중국 네 번째 국가급 고신기술산업개발구만 봐도 그렇다.
서부 대개발과 시진핑 시대 개막은 시안 발전을 더욱 재촉하고 있다. 시안은 시 주석 부친의 고향인데다 지리적으로 중국 중앙에 위치해 서부 대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역이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을 시안에 짓기로 한 것도 이런 배경을 감안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가 시안에 10나노급 낸드플래시 라인을 건설하기로 한 것은 지난 2012년 3월. 그 후 급속도로 진척돼 이제 건물 공사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일부 옥상의 환풍 시설 정도를 남겨 놓은 상태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지난해 12월 2일은 스모그 때문에 가시거리가 1㎞에 지나지 않았지만, 육안으로도 그 규모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방대했다. 생산라인 건설 비용으로만 23억달러(약 2조4000억원)가 투입됐다. 삼성전자는 향후 단계적으로 총 70억달러(약 7조3700억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시안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는데 적극 나선 이유는 투자 규모가 커서만이 아니다. 후방 산업군이 동반 진출함으로써 거대 첨단 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주변에는 동우화인켐·솔브레인 등 17개 협력사 생산 공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반도체 공장 가동 시기에 맞춰 이들 협력사들도 올해 상반기 중 공장 가동 채비를 마친다는 목표다. 뿐만 아니다. 건설 기간 중에는 330여개 협력사들이 동참했으며, 장기적으로 160여개 협력사들이 삼성전자 낸드 생산 프로젝트에 참여할 예정이다.
반도체는 파급 효과가 큰 산업인만큼 지방 정부의 지원은 `전폭적`이었다. 110kv 변전소와 스팀 종말 처리장은 물론이고 공항과 반도체 사업장을 직통으로 잇는 고속도로까지 깔아 줬다. 시안의 자랑 병마용갱 입장표 뒷면에는 `삼성전자 메모리 프로젝트가 시안으로 결정된 것을 축하한다`는 문구가 지금도 새겨져 있을 정도다.
삼성전자에 앞서 수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시안에 기지를 구축해 놓았다. 삼성전자가 있는 고신기술산업개발구를 지나다 보면 글로벌 기업들의 간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기업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의 연구개발(R&D) 센터, 지멘스의 철도 신호 생산라인, 마이크론의 반도체 후공정 라인, 인피니언의 칩 설계 사무소 등 글로벌 기업들의 공장이나 사무소가 즐비하다.
여타 해외 기업들이 먼저 시안의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 과거 주장삼각주나 창장삼각주에 자리한 글로벌 기업들은 생산 원가를 낮추기 위해 들어왔다가 이제 현지 시장 공략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선회한 기업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최근 서부 내륙에 진출한 기업들은 처음부터 중국 시장을 겨냥하는 측면이 크다.
그래서 첨단 생산 라인과 연구소가 유난히 많다. 그럴만도 한 것이 시안에는 중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대학들이 많다. 우수 인적 자원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중국과학원과 중국공정원 인력을 비롯해 전문기술인력은 41만명에 달하며, 대학 재학생이 98만명(전국 3위)이나 된다. 시베이(西北)대, 시안교통대, 창안대, 산시 사범대, 시베이 공대 등 6대 대학이 인재들을 배출한다. 민영대학교도 68개나 있어 규모와 수준은 전국 1위를 자랑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과거 수도여서인지 이곳 인재들은 시안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는 것을 느낀다”며 “우수 인재들이 많이 모여있다는 것이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
또 동쥔 시안시장은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가 들어오면 시안의 정보산업 수입은 2011년 780억위안에서 2015년 3000억위안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이미 발전할만큼 발전한 동부 연안의 도시와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한 점은 많다. 특히 도시 생활 환경은 극과 극이다. 자동차가 많아 도심은 늘 교통 혼잡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택시는 전 지역에 5000대 수준에 불과하다. 택시 요금은 베이징의 절반도 안되지만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니 이용 자체가 힘들다. 교통 인프라가 취약해 사업차 방문한 이들의 발목을 잡기 일쑤다. 글로벌 기업들의 직원이 이곳에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제 학교가 잘 갖춰져 있어야 하지만 3곳 정도다. 그나마도 열악한 수준이다.
하지만 시안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아파트 공사 현장만큼은 인상적이다. 분양률이 10%에도 못 미치는 데도 계속 짓는다. 산업 시설이 잇따라 들어서면 인력 유입도 클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안에서 2년째 살고 있는 김두철 씨는 “입주가 안 돼 불꺼진 아파트가 많지만 미래 인구 유입을 위해 일단 짓고 보는 것 같다”며 “생활에 불편한 것은 여전히 많지만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시안(중국)=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