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학기술인 열전! 멘토링 레터]"힘든 원인을 찾아봐야"

To. 토목과에서 원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는 후배에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토목과는 여학생에게 인기있는 과가 아니지요? 미국은 좀 나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학생이 호감을 느끼는 과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러나 저는 토목과 대학원에 입학하며 호기심과 열정이 남달랐어요. 종이와 연필 들고 사무실만 지키던 수학과 학생이, 안전모를 쓰고 직접 땀을 흘리며 실험실에서 일하게 됐을 때 기쁨이 무척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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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라는 아름다운 지성의 나무를 바라보며 홀로 생각에 빠지곤 하다가, 직접 팀원과 함께 현장 견학을 다니며 다리와 빌딩 등 실제 구조물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 생생함은 놀라웠습니다. 토목과 관련 수업을 들은 적이 없어도 대학원 생활에 대한 기대와 자신감은 큰 편이었습니다. 그 동안 열심히 했는데도 잘 안됐던 기억이 별로 없었고, 왠지 수학보다는 훨씬 쉬울 것 같았고요.

그런데 일단 전공 책을 읽는데 내용이 늘 불충분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수학은 원을 하나 정의한다면 원점과 반지름, 두 개 정보가 있어야 원 하나가 완전하게 정의 됩니다. 벡터라는 원소를 하나 지칭하여 쓴다면 벡터 공간이라는 전공간은 기본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논리 기반으로 정교하게 정보가 구성되어 있었던 수학과는 달리, 토목학은 아무리 읽어도 있어야 되는 정보가 없이 비었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습니다. 한참 고생을 하고 나서야 토목은 `논리의 엄격함`으로만 접근할 수 없고, 주로 경험과 목적 중심 서술이라는 수학과 차이점을 배웠습니다.

학과 수업시간은 주로 팀 프로젝트로 이루어집니다. 회사에서 실제로 의뢰 받아 디자인 하는 것처럼 4층 사무실 건물이나 철제 다리 등을 디자인 했었어요. 프로젝트마다 제출해야 하는 반복되는 계산이 정말 많았습니다. 생각을 깊이 하기엔 작업이 너무 단순했고, 생각을 거의 하지 않으면 실수하기 쉬워 처음부터 그 많은 계산을 다시 하게 되고요.

보통 한가지에 대해 깊이 오랜 시간 생각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이런 프로젝트를 감당하면서 생각 패턴을 바꿔야만했습니다. 생각 패턴은 생활 패턴과도 관계가 있어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하려면 올빼미 보단 다른 토목과 학생들처럼 `얼리버드(Early Bird)` 생활이 효율적이란 걸 알았습니다. 오랜 습관을 바꾸는 것도 스트레스였죠.

과 수업과 별도로 연구 조교로 석사 프로젝트에도 참여 했습니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을 새로운 법규로 내진 설계(지진을 위한 설계)하고, 그 구조물을 흔들면서 지진 시뮬레이션으로 파괴되는 동안 구조물의 거동을 관찰하는 실험입니다. 지진 발생 시 구조물이 무너지느냐 여부보다 어떻게 인간에게 좀 더 안전하게 방식으로 무너지느냐가 관건입니다.

학교 연구소엔 큰 규모의 구조물을 6개의 방향으로 흔들며 입체적으로 지진을 모사할 수 있는 장비가 있었습니다. 규모가 큰 실험인 만큼 실험실 일은 육체적으로 고되고 힘들었습니다. 철근 다발을 옮겨야 하는데 제 힘으론 꿈쩍도 안 했고요. 1인치쯤 되는 나사를 돌리기 위해 공구를 드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연구 일을 다른 힘센 친구에게 부탁 할 수도 없기에 남몰래 흘린 눈물도 많았습니다. 지도 교수는 미국인이었는데도 밤 10시에 사무실로 결과물을 갖다 주면 바로 다음 일을 또 줍니다. 한국 사람처럼 일을 하시더라고요. 아침 8시에 미팅할 때도 많고, 외부업체 공사가 있는 날은 새벽 5시에도 미팅을 했었습니다. 다른 친구와 달리 저는 더 힘들어하고, 더 쉬어야했기 때문에 스스로 `게으르다`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제가 보통 여학생보다 체력이 약하다는 걸 알게 되기 전까지 말이죠.

토목과에서는 이상하게 저의 능력이 잘 드러나지도, 저의 노력이 쉽게 결과로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오랜 집처럼 편히 지내던 수학을 떠나, 수학 하나를 무기로 들어간 토목공학과. 그 바뀐 환경과 목적의 차이점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나날이 앞길이 꽉 막힌 것 같았었습니다. 하지만 노력하며 그 막힌 길이 하나하나 뚫렸고, 들인 노력은 수학과 토목 뿐 아니라 다른 공학 분야를 접할 때, 또 인문사회학을 공부 할 때에도 필요한 학문적인 융통성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없을 때 그냥 막연히 절망하기 보다는 무엇이 그 요인인지 살펴 찾아내며 공부하는 것이 큰 보람인 것 같습니다. 후배도 그 요인을 찾을 때까지는 중도에 포기 하지 마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From. 정나리나 울산과학기술대학교(UNIST) 연구원

제공:WISET 한국과학기술인지원센터 여성과학기술인 생애주기별 지원 전문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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