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특구가 설립된 지 올해로 40주년이 됐다. 1966년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시작으로 한국의 국가주도 과학기술개발이 본격화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대다수 이공계 정부출연 연구기관은 1973년 기획된 대덕지구에 입주해 현재에 이르렀다.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해 지금은 1000개가 넘는 기관이 입주하고 5만명 이상 근무하고 있으며 연구예산 7조원을 매년 사용하는 세계적인 과학기술 거점이 됐다. 최근에는 과학비즈니스벨트 건설로 새로운 도약을 맞고 있다.
지난달 29일 열린 대덕특구 기념행사에서 대덕의 위상을 실감했다. 대통령이 축하하고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국내외 저명인사가 대거 방문해 대덕의 과학기술 역량에 놀라고 부러워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대덕특구가 기획되고 입안된 1970년대와 현재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초기에는 고급인력에게 파격적인 고용조건을 제시했고 기관연구비도 넉넉했다. 과학기술 연구기관이 최고의 직장이며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기억한다. 당시 한국의 경제 사정이나 국력으로 보면 과학자는 특별대우를 받은 셈이다. 과학자들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반면에 2013년 현재는 그런 자부심을 찾아보기 힘들다.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갈수록 과학기술자는 직업으로 매력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그 무엇이 혹시 있지는 않는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1호 연구원으로 취직해 14년을 재직하고 1991년에 이직한 내 눈으로 보면 현재의 대덕단지도 여전히 매력적인 일자리를 주는 곳이다. 다만 글로벌 기준과 맞지 않는 문화와 관습을 고친다면 말이다.
무엇을 고칠 것인가. 먼저 창의성 극대화를 기본으로 모든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민간·대학·벤처가 교육·연구·기술개발의 주력부대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국가주도연구는 이들보다 한 발짝 앞선 곳에서 놀아야 한다. 또 그 결과를 모두가 향유할 수 있게 공개해야 한다. 민간과 경쟁하거나 연구사업을 독점해서는 국민세금 투입을 정당화하기 어렵다. 연구업적에 대한 과도한 기술료 징수나 지나친 인센티브 지급도 조심해야 한다.
둘째, 움직이는 연구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초기와 달리 지금의 국가연구기관은 정체된 조직문화를 갖고 있다. 정규 연구원의 비율이 100%에 육박해 늙어가는 연구조직이 돼서는 새로운 연구를 시도하기 어렵다. 박사 후 연구자, 방문연구자 비율을 획기적으로 올리고 정규연구원도 더 나은 직장에서 스카우트가 넘치는 신나는 문화를 구현해야 하지 않을까. 세계적인 기관은 정규 연구원 비율이 절반 이하인 곳이 많다.
연구비 수주전쟁은 없어져야 한다. 매년 바뀌는 공무원을 찾아다니고, 매번 바뀌는 사업 프로그램에 휘둘리는 과학자에게 자부심이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 국가 연구 사업이 정치에 좌우되지 말아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5년 주기의 연구 사업을 새로 기획해야만 하겠는가.
나는 지난 대덕특구 40주년 기념 국제 콘퍼런스에서 대덕의 발전을 위해서는 △인재 유동성 확대 △창의성 극대화 △탄력적이고 자율적인 연구관리 △민간과의 연구협력 확산 등 네 가지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청중에는 일반시민·학생·외국인도 다수 있었으며 이들과 의견을 나눈 결과, 특히 창의성 부족을 한국의 국가과학기술연구의 제일 큰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창의란 기관설립을 하고 예산을 투입한다고 생기지 않는다. 이는 문화의 문제고 살아가는 방식의 문제다. 세상에서 크고 중요한 문제를 파악하고 과거와 전통을 파괴할 용기가 있을 때에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업적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최양희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 교수 yhchoi@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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