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눈감은 은행, 두 번 상처 입는 해킹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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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인 이 모 씨는 지난 8월 전자금융 사기를 당했다. 인터넷 뱅킹으로 송금한 500여만원이 엉뚱한 사람에게 전달됐다. 이체 과정에서 이상 낌새도 없었다. 평소대로 은행 사이트에 접속해 절차를 따랐을 뿐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메모리 해킹`이란 신종 수법이었다. 누군가 PC에 악성코드를 몰래 설치, 중간 과정에서 돈을 가로채간 것이다.

엄연한 피해자였던 이 씨. 하지만 그는 사고 이후 은행 측의 무성의한 태도에 두 번 상처를 입었다. 은행의 인터넷 뱅킹 시스템이 해킹에 무력화돼 피해를 입었는데도, 적극적인 문제 해결은커녕 떠넘기기식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은행은 보상 문제는 보험사 소관이라며 공을 넘겼다. 그런데 보험사는 이 씨의 이야기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잘못이 있는 건 아닌지 따져 물었다.

이 씨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얻은 결론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해 당사자인 내가 왜 보험사와 싸워야 하는지, 또 은행은 무얼 하는지 정말 화가 많이 났다”며 “이번 일을 겪으면서 누구도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날로 진화하는 전자금융사기에 피해가 막심하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해킹으로 인한 인터넷 뱅킹 피해액은 올해 40억원을 넘을 전망이다. 지난해보다 무려 6배 증가한 규모다. 우리 사회에 억울한 피해자들이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구제는 미흡한 실정이다. 이 씨 사례처럼 금융기관들의 책임 미루기로 소송까지 벌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지난 23일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정된 법률이 시행에 들어갔다. 금융기관에 일차적 책임을 묻는 전자금융거래법 제9조다. 개인의 피해 구제를 위한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제 현장에서의 적용이다. 이번 개정에도 금융기관의 면책조항이 너무 광범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꼼수`를 부릴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금융기관의 원칙적 책임을 규정한 법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관계 당국의 확인과 점검이 필수적이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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