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민간 기술평가기관 연내 설립…은행 등 업계는 "실익없다" 이구동성

금융위원회가 약 200억원의 자금을 은행으로부터 강제 출연해 민간 기술평가기관을 연내 만든다. 은행과 기존 기술평가정보 제공기관 등이 이구동성으로 정부가 실효성 없는 기구를 만든다며 반대하고 있어 논란이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민간 기술신용평가회사를 별도 설립해 기술신용평가등급을 산출하고, 이를 은행이 의무 사용하도록 법제화하는 기술평가통합시스템 구축방안을 마련, 발표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술보증기금 등 기존 기관의 업무와 중복되지 않도록 협의 중”이라며 “그동안 중소기업 등의 기술평가정보는 은행이 활용하려해도 유인책이 없어 기술력 있는 기업만 손해 보는 구조”라며 시스템 구축 필요성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금융위 발상에 학계는 물론이고 금융권, 업계조차 반대하고 있다. 햇살론, 국민행복기금, 성장사다리펀드와 마찬가지로 감시기관이 피감기관을 강제해 정부정책에 구색을 맞추려고 한다는 비판이다.

먼저 기술평가심사를 강제화하고, 정부당국이 민간회사를 설립한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박창균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 기술평가는 정부가 강제화할 수 없는 분야로 금융권이 이 기술평가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간접 지원하는 쪽으로 가는 게 맞다”며 “기술신용평가등급을 의무적으로 금융권이 사용하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해 패널티를 주는 법제화는 잘못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만약 은행이 자체 신용평가 모델을 적용해 대출 불가가 나온 중소기업이 정부 기술평가 모델을 적용해 대출 가능으로 나올 수 있지만, 이 기업이 부실화되면 책임은 고스란히 금융기관이 지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당국이 생색내고 책임은 민간이 지는 상황이 빚어지게 된다.

새로운 기술평가 등급 산출 실효성도 논란거리다.

김형수 벤처캐피탈협회 전무는 “금융위원회가 민간 평가기관을 만들어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건지 알맹이가 없다”며 “기술금융 평가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고 꼬집었다.

김 전무는 “별도 민간 기관을 설립하기보다 기술보증기금, 중진공 등 기술평가정보 제공기관의 정보를 개방해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기존 기술평가기관도 별도 기관 설립에 대해 역할 중복과 전문성 결여로 시장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기관 관계자는 “기존 기술평가기관이 생성한 평가 정보를 민간기관이 활용해 다시 평가하는 것은 비효율적 업무 중복”이라며 “같은 기술도 사업화주체, 시장상황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평가등급이 다르게 결정되는 데 민간기관이 이를 객관적으로 결정할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기술평가료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민간기관이 설립되면 기술평가료 수입과 DB활용에 따른 지급수수료, 운영비 등을 감안하면 기업이 지불할 수수료만 500만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한다. 평균 90만원인 기보 등의 수수료보다 5배 이상 비싸진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존 신용평가사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제시한 방향성은 맞다”고 전제한 뒤 “다만 금융기관이 민간회사를 설립하고, 기술신용평가등급을 강제화해 페널티를 주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별도 민간기관을 설립하기보다 기술보증기금이나 산업은행 등이 보유한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이 효과적”이라며 “그래야만 동양 사태처럼 신용등급을 부풀려 투자자 손실을 초래하는 문제를 선제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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