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IBM 직원이 출장을 다녀와서 사용한 경비를 청구하면 필리핀 마닐라 공동 인사서비스 센터가 이를 처리해 해당 금액을 지급한다. 복잡할 것 같지만 매우 빠르고 정확하다.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의 인사 업무를 이곳에서 일괄 처리한다. 지역이나 국가별로 운영해오던 조직과 업무 프로세스를 하나로 통합하는 `글로벌 통합기업(GIE)` 체계를 도입하고 나서부터다.
<기업 형태의 변화 / 자료:한국IBM>


IBM은 2003년부터 세계 모든 지역 조직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단일 기업처럼 움직이는 GIE 체계를 도입했다. 글로벌 조직이 통합되면 의사결정이 빨라지고 고객사에 더 많은 선택 기회와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상황에 맞는 최고의 인력과 기술 공급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비용절감과 생산성 향상 효과도 뒤따른다.
GIE 체계 도입 이후 IBM은 매년 순익이 10~12% 늘어나는 효과를 거뒀다. IT 측면에서는 55개 데이터센터와 1만6000여개 애플리케이션을 각각 6개와 4500개로 통합해 비용을 줄이고 관리 편의성을 높였다. 지역과 국가별로 운영하던 최고정보책임자(CIO)도 한 명으로 일원화해 의사결정 속도를 높였다.
◇세계 모든 조직을 하나처럼 운영하다
IBM이 GIE 도입 검토를 시작한 것은 기업 환경 변화 때문이다. 19세기 중반부터 1차 세계대전까지 기업 형태는 `국제기업`이었다. 본국에 중심을 두고 해외 영업과 유통망을 운영하는 게 중심이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기존 무역 네트워크는 더 이상 이용이 어려워졌다. 보호무역이 확산되면서 관세, 환율 통제 같은 무역 장벽이 등장했다. 기업은 이에 대응해 오늘날 다국적 기업으로 진화했다. 각국에 지사와 공장을 두고 무역 장벽을 넘는 게 다국적 기업의 목적이다.
2000년 초반 등장한 GIE 모델은 자유무역주의와 국제투자 확대, IT혁명, 표준 기술과 프로세스 확산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기업 간 활동 증가와 글로벌화 확산으로 업무 복잡성이 커지면서 다국적 기업은 한계를 드러냈다. 국가나 권역 중심 사업 운영을 탈피해 세계 모든 조직을 하나의 회사로 간주하고 운영하는 GIE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GIE 전략 구현의 핵심은 `선택`과 `집중`이다. 해당 지역에서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시장 접점조직`은 특화한다. 지원조직은 표준화하고 통합해 각 나라가 아닌 최적의 위치에서 운영한다. 인도가 직원과 고객, 생산 지원을 위한 서비스 센터와 연구개발(R&D) 기지로 부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적의 위치에서 최고의 가치 제공
IBM은 GIE 모델 도입을 위해 △시장 접점 조직 특화 구현 △공동 서비스 구현 △글로벌 비즈니스 디자인 등 세 가지 전략을 수립했다. 우선 시장 접점조직을 특화하기 위해 하부 조직에 자원과 권한을 위임하고 이를 지원할 영업지원 조직을 통합했다. 업무 속도를 높이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시장 특성과 고객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개별 국가, 하위권역, 상위권역, 본사로 이뤄진 의사결정 체계를 통합운영팀(IOT)과 통합시장팀(IMT)으로 통합했다. IOT가 글로벌 차원에서 영업을 지원하고 IMT에 속한 국가별 영업조직이 빠른 의사결정으로 고객관리 성과를 높였다.
마케팅, 기획, 홍보, 재무, 인사를 비롯한 11개 지원 조직은 글로벌 차원에서 수평적으로 통합했다. 비용절감과 전문성 강화, 효과적 사업부 지원이 목적이다. 공동서비스의 효과적 지원을 위해 비즈니스 솔루션 `센터 오브 엑셀런스(CoE)`도 개발했다. 통합과 자동화, 최적화, 향상이라는 4가지 원칙을 수립해 성과 극대화와 안정적 운영을 유도했다.
GIE 전략을 완성한 것은 글로벌 비즈니스 디자인이다. IBM은 비용과 역량을 고려해 세계 최적의 위치에서 업무를 수행하도록 통합 조직을 만들었다. 대표 사례가 인도에 설치한 글로벌 비즈니스 솔루션 센터 두 곳이다. 지역적 특성을 활용해 원활한 의사소통, 자원 배분, 표준 프로세스로 업무 생산성을 높였다.
◇전체 구매 비용 17% 절감
샘 팔미사노 전 IBM 회장은 GIE 모델을 도입하면서 “모든 나라에 IBM 조직을 설립할 필요는 없다. 중복 투자와 잉여 인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운영조직을 통합해 세계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위치에서 핵심 기능을 구현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GIE 모델 도입 이후 IBM은 중복 투자를 최대한 줄였고 핵심 거점 기능은 강화했다. 효과는 다양했다. 2003년 66억달러(약 7조원)이던 순익은 이듬해부터 계속 상승해 2006년엔 94억달러(약 10조원)로 치솟았다.
구매 분야 골칫거리였던 복잡하고 다양한 공급망 관리 프로세스, 시스템은 글로벌 차원의 통합된 프로세스로 재탄생했다. 300개 이상이던 구매 조직은 글로벌 구매 센터 3곳으로 통합했다. 전체 비용은 17%나 줄었다.
기존에는 재무 조직이 각국에 산재해 의사결정 체계가 효율적이지 못했다. GIE 모델 도입 후 강력한 비즈니스 통제와 의사결정 지원 기능을 갖추게 됐다. IBM은 재무 분야에서만 25~35% 비용을 절감했다. 제품과 지역 중심 마케팅 활동은 13개의 표준화된 글로벌 마케팅 프로그램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IBM은 GIE가 비용절감, 의사결정 속도 향상, 성장시장 진출 가속화를 구현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수차례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IT 시장을 주도하는 데 힘을 보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전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