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어느 모임에 가도 이 질문이 꼭 나온다. “KT 회장 누가 된데요?” 잠깐 침묵에 빠진다. 며느리도 모르는 걸 누가 알까. 이내 누가 되네 마네 하마평이 쏟아진다. 정작 중요한 질문은 나오지 않는다. KT 새 수장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전·현직 가릴 것 없이 KT 사람들 마음이 지금처럼 착잡하고, 창피한 적이 없다. CEO가 줄줄이 사법 문제로 낙마한 것도 그렇지만 `회사가 이 지경 되도록 나는 뭘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들리는 얘기라고는 생뚱맞은 하마평뿐이니 더 심난할 따름이다.
KT에서 가장 엉망인 것은 사업이 아니라 조직이다. 유능한 사람이 무능한 이와 한 묶음으로 잘려나갔다. 남은 사람도 이리저리 눈치만 본다. 통신산업을 일군 자부심은 온데간데 없다. 경영진으로부터 온통 무능한 비리집단인양 취급받은 탓이다.
새 CEO는 구심점 없이 무력감만 팽배한 분위기부터 바꿀 사람이어야 한다. 이번만큼 주주나 정부보다 KT 사람들이 원하는 사람이 와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를 묻는 이는 아무도 없다.
KT 사람들이 원하는 새 CEO는 갈래갈래 찢긴 구성원 마음을 하나로 모을 사람이다. 상처를 보듬어주고, `우리 한번 다시 뛰어보자` 기를 불어넣을 사람이다. 회사, 직원, 고객을 위해 몸을 던질 사람이다. 단기 성과와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지속성장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고 중장기 투자를 추진할 사람이다. 3년이 지나 직원들이 붙잡더라도 훌훌 털고 떠나리라 각오한 사람이다. 불행하게도 거론되는 인사 중에 잘 보이지 않는다.
새 CEO는 KT와 통신산업을 잘 알아야 한다. 꼭 고집할 수 없겠지만, KT 출신이 가깝다. 유능한 사람도 있고, 당장 절실한 조직 화합에 적합하다. KT 출신이 아니라면 또 다른 `핸디캡`을 뛰어넘어야 한다. 관료 출신이라면 한 푼이라도 직접 돈을 번 경험이 있어야 한다. 대기업 출신이라면 절대 오너 품에서 자란 월급쟁이 사장의 한계를 극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민영화 이후 바람 잘 날 없던 KT다. 새 CEO는 외풍을 온몸으로 막아낼 사람이어야 한다. 정치적 영향력을 뜻하는 게 아니다. 직원들을 똘똘 뭉치게 해 누구도 섣불리 건들지 못하게 할 힘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KT 사람들이 카리스마 형 리더를 원하는 게 아니다. 이미 질렸다. 부당한 외부 간섭을 막아달라고 이런 리더를 모셨건만 더 엉망이 됐다. 안에서만 살벌한 칼날에 직원들이 숨죽여 지냈다. 이석채 회장이 사직서를 낸 날 직원들 카톡에 나돈 `광복절`이란 표현에 그간의 마음고생이 압축됐다. 만일 새 CEO가 외부 영입 인사를 이 회장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옥석구분 없이 내치는 걸 카리스마라고 한다면 이 또한 `노땡큐`다.
`헤게모니`는 한 집단·국가·문화가 다른 그것을 지배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개념을 정립한 이탈리아 정치이론가인 안토니오 그람시의 본뜻은 다르다. 구성원의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낼 힘이다. 남을 통솔해 따르게 하는 힘이나 일정 분야에서 두루 인정받는 것을 뜻하는 `권위`란 말도 그렇다.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평가로 생겨난다. `권위적`이라는 말과 전혀 다르다. KT엔 권위적인 카리스마 형 리더가 아니라 임직원 마음을 움직여 권위와 헤게모니를 되찾을 리더가 필요하다.
KT 이사회가 이주부터 후임 회장 후보 추천 작업에 들어간다. KT를 더 이상 엉뚱하게 이끌지 않을 선장을 찾는 작업이다. 인사 원칙이 여럿 있지만 으뜸은 예측 가능한 인사다. `아, 이 사람이라면 믿고 따를 만하겠네` KT 사람들이 이렇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후보에 올라야 한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